제목[2012.02.12] "WCC란 무엇인가?" - 제9장 …②2012-02-12 18:00
작성자

'WCC란 무엇인가?' - 제9장 신앙고백 형식주의…②
 
WCC가 영리한 포용주의 성만찬론을 개발했으나 로마가톨릭교회는 개신교회의 성만찬을 인정하지 않는다. 개신교인들의 로마가톨릭교회 성만찬 참여를 허락하지 않는다. 로마가톨릭교회 신자들이 개신교회의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을 엄격히 금한다. 사제들이 개신교회 교역자들과 함께 성찬을 공동 거행하는 것을 금한다. WCC가 다양한 신학과 신앙이해와 제도를 일치시키려고 성만찬을 공동의 예식으로 천명하지만, 성만찬조차 실질적인 표지는 아니다. WCC의 실질적인 표지는 독일 빌링겐국제선교대회(IMC, 1952)가 제시하고, 미국 에반스톤 총회(1954)에서 확고해지고, 인도 뉴델리 총회(1961)에서 절정에 이른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이다. 역사 참여, 인간화, 해방투쟁이 WCC의 실질적인 표지로 자리 잡았다. WCC는 인력과 재정을 '하나님의 선교', 인간화, 해방투쟁 등에 대폭 지원했다. 방콕에서 열린 세계선교와 전도대회(1973)는 복음을 통한 구원보다 사회참여를 통한 구원을 앞세웠다. WCC는 하나님의 말씀선포는 뒷전으로 보내고 '성만찬'을 표지처럼 앞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사회참여를 교회의 가장 우선적인 사명으로 보는 '하나님의 선교'를 실질적인 표지로 삼아왔다. '하나님의 선교'가 실질적인 표지이고 성만찬은 형식요건이다. WCC의 성만찬은 신앙고백 형식주의의 상징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3.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 충분조건인가?
WCC는 로마가톨릭교회, 정교회, 개신교회가 모두 권위 있는 신앙문서로 받아들이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381)를 '공동의 신앙고백'으로 채택했다. 울타리도 없고 말뚝도 없는 것같은 세계 교회들의 협의회적 교제체가 이 신조문을 회원교회들이 고백해야 할 공동의 신앙고백문으로, "하나의 신앙고백"으로 채택한 것은 굉장한 발전으로 볼 수 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는 귀중한 역사적 신앙고백문이다. 믿을만한 신조문이다. 믿을만하다는 것은 그 신조의 권위, 정확성, 건전성을 뜻하는 것이며, 가시적 교회 일치에 필요한 충분조건이라는 뜻은 아니다. 위 신조문의 건전성과 교회 일치의 조건은 구분되어야 한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는 기독교인이 믿고 고백해야 할 최소한의 조항들을 망라하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아리우스주의자들의 도전과 성령론 문제 등 새롭게 등장한 당시 교회의 신학적인 이슈에 대응하려고 신앙 요점들을 간명하게 열거한 것이다. 이 신조는 사도들의 신앙의 핵심을 담고 있지만 시대적 제약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4세기의 지중해 문화와 당시 교회의 필요와 종교적 상황에 걸맞게 만들어진 것이다. 교회 대표자들은 당시 교회에 필요한 진리 변증의 기능을 수행하려고 자신들이 믿는 신앙의 요점을 간추려 담았다. 기독교회는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신앙고백을 발전시켜 왔다. 특히 종교개혁시대와 그 직후에 여러 가지 성경적인 신앙고백서들이 많이 작성되었다. 루터파의 아욱스부르크신앙고백서, 개혁파의 헬베틱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신앙문답과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그 유산을 물려받은 탁월한 신앙고백 문서들이다. WCC는 우여곡절의 역사 속에서 발전해 온 신앙고백서들을 제쳐두고, 21세기에 존재하는 자신의 신앙고백을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381)에 축소시킨다. 개신교회의 신조들을 무시한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는 21세기에 존재하는 교회들의 가시적 일치의 신앙고백적 토대로는 여러 면에서 불충분하다. 선행이 구원에 필수적이라는 펠라기우스주의의 오류를 반박할 부패한 인간성에 대한 고백이 없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칭의 교리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 화목제물 사역, 인간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 성경의 권위와 신적 속성과 무오(無誤)를 언급하지 않는다. 죄의 회개, 은혜의 수단, 천국과 지옥, 내세와 상벌을 말하지 않는다.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 무오설, 마리아 교리, 화체설, 희생제사, 연옥교리, 가경, 구원교리의 오류를 지적하는 고백 내용이 없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가르침의 핵심들을 충분히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는 교회연합과 일치의 최소한의 조건을 제시하려는 의도로 작성한 것도 아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필요로 하는 신앙고백문은 오늘날의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성경적인 답을 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예수 밖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있다고 하는 주장에 대한 성경적인 진리를 고백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항목이고, 종교혼합주의, 상대주의 진리관,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을 판단할 수 있는 신앙고백이어야 한다.
결론: 야누스의 두 얼굴
가시적 교회 일치를 위해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 속에서 발전해 온 신앙고백을 무시하고, 21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자신이 당면한 문제들은 다루지 않고, 신앙고백을 4세기의 신조에 축소시키고, 그것을 교회 일치의 충분조건으로 삼는 것은 에큐메니칼 단체라는 점을 고려해도 매우 미흡하다. WCC는 "하나의 신앙고백"(1990)을 작성한 바로 그 해에 예수 그리스도 밖에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있다고 하는 종교다원주의 문서 "바아르선언문"(1990)을 작성했다. 이 두 개의 문서들은 '다양성 속에서 일치'라는 미명으로 묶거나 양립 가능한 내용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만큼이나 다르다. WCC의 야누스(로마신화에 나오는 두 얼굴을 가진 신)다운 특성을 드러낸다.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는 문서를 만들면서도 "하나의 신앙고백"(1990) 문서를 작성한 것은 일단의 구색을 갖추기 위한 것이며, 신앙고백 형식주의의 표현이라 할 것이다. 신앙고백 문서는 단지 문서일 뿐 회원들의 신앙을 규제하지 못한다. 신학적인 울타리가 없는 WCC가 "벰문서"(1982)나 "하나의 신앙고백"(1990)을 내세우는 것도 형식주의의 결과라 할 것이다. WCC는 일찍부터 "교리는 갈라지게 하지만, 봉사는 하나 되게 한다(Doctrine divides, Service unites)"라는 구호를 외쳐 왔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는 교리의 전형(典型)이다. WCC는 천차만별의 '진리'들과 '복음'들의 이종서식(異種棲息)을 용인한다. 다양한 해석과 의중유보(意中留保)를 묵인한다. 신학적인 울타리가 없는 마당에 "하나의 신앙고백"을 채택한 것은 신앙적 공통분모를 찾아내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신앙고백 형식주의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