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2011.12.04] "WCC란 무엇인가?"-제4장…②2011-12-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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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란 무엇인가?' - 제4장 사회구원 지상주의 …② 
 
2. 복음: 연대투쟁
WCC는 선교와 함께 전도, 복음전도라는 단어를 병용한다. 그러나 실상 '전도'보다는 '선교'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전도'는 종교 간의 대화에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WCC가 말하는 복음 곧 기쁜 소식은 무엇이며, 전도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선교' 패러다임을 제시한 세계선교위원회(IMC)를 흡수 병합(1961)한 후 스웨덴 웁살라에서 모인 WCC 제4차 총회(1968)는 선교를 가난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이해했다. 인간화, 새로운 인간성, 교회가 가난한 자들, 학대받는 자들, 무시당하는 자들,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자들 편에 서야 할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WCC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지 못하는 세계의 수억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마땅히 가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WCC의 변질된 선교 개념은 복음주의자들의 단합을 자극했다. 스위스 로잔에서 모인 복음주의 선교대회는 진리전파가 사회구원보다 우선된다는 내용의 '로잔언약'(1974)을 발표했다. 이에 WCC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문서상으로나마 복음주의계의 비판을 일부 수용했다. '선교와 전도: 에큐메니칼 확언'(1982)은 복음전도의 필요성과 회개, 죄의 용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하나님의 은혜, 사죄의 은혜,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만남,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간헐적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이런 용어들과 표현들은 해방신학과 '하나님의 선교'로 일관하는 서술의 들러리처럼 일부 언급되고 있다. WCC의 선교와 복음전도에서 가난한 사람은 아주 특별한 위치에 있다. 가난한 자는 '불의한 정치적 분배의 희생자들'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은 그들에게 주어진 정의를 돌려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가난한 사람으로 이 땅에 왔고, 그들 중 한 사람으로 살았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약속한 주님을 본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파하도록 부름 받았다. 예수는 자신을 가난한 사람들과 동일시하는 공감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을 개인적이고 구조적인 죄의 희생자로 인식했다."라고 한다.
WCC는 교회의 본질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그 '기쁜 소식'을 정의, 자유, 해방을 향한 노력이 열매 맺지 못하는 현실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고 '투쟁'하고, 그 투쟁에 연대하는 것과 동일시한다.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복음전도)은 빈부격차의 문제,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만큼의 물질을 소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증가, 인종차별, 무력함, 고독, 가족과 공동체 결속의 파괴 등 가난한 구조가 가져온 주변화(maginalization)와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세상의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이 아직도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지 못한 이 비극적인 상황은 여전히 존재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힘을 가진 사람들의 억압과 불의한 정치적 분배의 희생자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역은 그들에게 정의를 돌려주는 것이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을 개인적이고 구조적인 죄의 희생자로 인식했다."라고 한다. 여기서 '기쁜 소식', 곧 복음의 선포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WCC는 "예수는 유린당하고, 무시당한 모든 사람들과 연대했음을 선포한다. …매일매일 예수와 더불어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그들과 연대하도록 초청받는다."라고 답한다. 가난 극복을 위한 투쟁에 초청하고 응하는 것이 복음전도이며, 복음선포이며, 복음증거라는 것이다.
결론: 선교 과업의 우선순위
기독교 단체나 기구의 역사는 말이나 문서가 아니라 실제로 수행해 온 활동으로 평가된다. WCC의 인력구조, 예산활용, 각종 프로그램을 분석하면 이 단체가 과연 전도에 어느 정도 열성을 다했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전도, 복음선포, 구령사업, 교회건설, 영혼의 문제에 과연 어느 정도의 인력과 재원을 지원했는지,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WCC의 선교와 전도 역사는 '하나님의 선교'에 근거한 인간화, 해방투쟁 일변도였다. 사회구원 지상주의로 일관했다. WCC의 사업계획, 특히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 활동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요 개인적인 구세주로 받아들이도록 도전을 받아본 적이 없는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분명한 말로써 선포해야 하는 일을 실제로 최소화하거나 무시했다. WCC의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가 발전시킨 '종교간의 대화 신학'은 기독교의 복음 증거를 무디게 하거나 복음전도를 '선교'의 장애물로 여기게 했다. 결국 WCC로 하여금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혼합주의에 빠져들게 했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은 언제 어디서나 고귀하고 순결하다. 복음은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물질적인 가난과 영적인 가난은 모두 기독교회의 관심사이다. 사회참여와 복음전도는 다 중요하다. WCC도 문서에는 이 두 가지가 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복음주의는 이 두 가지 사이에 우선순위가 있다고 본다. 주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고 분부했다.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 지상명령의 핵심이며 우선 과제이다. WCC는 '통전적 선교'를 말한다.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 영혼에 대한 봉사와 육체에 대한 봉사를 분리할 수 없다고 한다. 복음주의 교회가 수직적이고 영혼에 대한 봉사에 기울어져 통전적 선교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과연 WCC 에큐메니칼 신학과 실천에서 '통전적 선교', 종합적인 선교가 실제로 가능할까? 십자가와 이신칭의의 구원의 도리를 전하는 선교와 전도 활동을 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듯하다. 그들에게 '복음전도'는 에큐메니칼 신학이 표방하는 종교다원주의, 종교대화주의, 지향하는 종교혼합주의, 그리고 이것들을 떠받들고 있는 구원 보편주의의 진로를 가로막는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