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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7.02.26] 저 같이 미련하고 어리석었...조병진2017-02-26 15: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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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같이 미련하고 어리석었던 자에게도
긍휼과 사랑을 베푸시고
행복한 인생이 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조 병 진

 

 

제 나이 금년에 만 68세로, 그동안 어느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저는 고향 평택에서 조부모님이 많은 농사를 지으시는 전형적인 시골 부잣집에서 장손으로 태어나 자랐습니다. 일 년 농사와 추수를 마칠 즈음 초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큰 굿판을 벌이면서 미신을 따르고 고조부님 제사까지 챙기는 등 달마다 제사가 끊이지 않는 그런 종갓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옛말에 부자가 3대를 못 간다고 하였듯이, 집안이 갑자기 몰락하여 저는 공부를 중단하고 부모 슬하를 떠나 서울에 올라와 살았습니다. 그런데 운이 좋았던지 일찍 자리를 잡아 결혼을 하고 그사이 많은 재물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자수성가하였다는 주위 사람들의 칭찬 속에 세월 가는 줄 모르고 흥청대다가 결국 사업은 병 들고,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이곳 저곳으로 이사를 다녔습니다. 엎친데 덥친다고 이혼까지 하였습니다. 많은 식솔들을 데리고 월세방을 전전하며 예사로 끼니를 굶는 중에 인생무상이란 말을 절감하였습니다. 그런 중에도 귀는 나팔귀가 되어 사람들이 이것이 좋다 하면 남에게 뒤질세라 앞장서 쫓아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술친구들과 어울려서 한량 아닌 한량으로 살았습니다. 안 해 본 일 없이 막판에는 있는 돈 없는 돈을 모두 끌어다가 다단계 사업에 부어놓고 천금을 기다리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랑하는 가족마저 하나 둘 제 곁을 떠나갔습니다.

 

그 때부터는 이것이 좋을까 저것이 좋을까 귀동냥으로 들은 여러 가지 우상종교를 다 쫓아다녔습니다. 나중에는 성당에서 영세를 받고 김수환 추기경의 견진을 받고는, 이제부터는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고향에 남아있던 마지막 땅 마지기를 처분하여 새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마저 다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또 옆집 아주머니가 절에 가서 조상님께 천도제를 지내면 일이 다 잘 될 것이라고 하므로 또 여기저기서 어렵게 돈을 마련하여 천도제를 지낸 후 열심히 절에 다녀보았지만 역시나 쓸 데 없는 일이었습니다.

 

입에 대서는 안 될 것을 입에 대고 폐인이 다 되었을 때, 친지의 손에 이끌려 원주에 있는 한 교회에 갔습니다. 교인들을 따라 처음 찬송하는데 이상하게도 찬송가 가사가 세상에 진실한 친구가 없고 늘 외롭기만 했던 저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목사님이 진심으로 위로해 주며 술과 담배 같은 속된 것을 끊도록 기도해 주시고, 이제부터는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도록 당부하며 고추장 한 통과 또 여러 가지 먹을 거리가 든 선물꾸러미를 싸주셨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차에 문제가 발생하고 또 큰 사고의 위험이 있었지만 그 때에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고 위험을 비껴가는 그런 기이한 일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여전히 우상숭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며 담배보다 더 해로운 나쁜 것을 또 입에 대다가 지금은 제 집사람이 된, 당시에 교제 중이던 아내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그만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고 심하게 다투다가 저는 용인에 내려가 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 때가 1997년 10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 저는 저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중고차의 운전석에 앉아 난생 처음 소리 내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동안 용돈까지 줘가며 저를 보살펴 준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아내를 축복하는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기도하고, 또 저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용서해 주시고 이제 바르게 살도록 힘과 용기를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속이 후련해지도록 실컷 울었습니다.

 

사업하면서 알게 된 아내와 교제할 때에 빚 청산을 하고 남은 것이 없어 한강 고수부지에서 텐트치고 석 달을 지내다가 아내의 도움으로 그나마 조금은 사람답게 살아왔었기에, 아내에게 몹시 미안하고 아내 보기가 부끄러웠습니다. 옷가지를 챙기러 다시 서울에 올라온 저를 아내는 언제 다투었냐는 듯 온순한 얼굴로 대하며 밥을 차려주고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안 가겠다는 아내를 장시간 설득하여 함께 용인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용인에 내려온 이듬해에 IMF 사태가 터졌습니다. 그 전에 사업을 정리하고 빚 청산을 다하고 내려왔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많은 채권자들의 빚 독촉으로 도저히 제가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변에 반듯한 건물 하나 없는 곳에 반지하 방을 얻어 아내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용인에 와서 은혜와진리교회의 장로님과 권사님의 사랑과 전도로 우리 교회의 교인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저는 그 전의 잘못으로 한동안 영어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저에게 헛되지만은 않았습니다. 차가운 감방 안에서 지나온 시간을 성찰하고 잠잠히 기도하게 하시고 저를 거듭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2심 재판 후 3심을 신청했다가 취하한 다음, 그렇게 큰 죄도 아니었는데 다들 가기를 두려워하는 청송교도소에서 1년을 수감 생활하였습니다. 아내는 그동안 소송에 드는 비용을 이리저리 마련하고 또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먼 길을 면회를 와주었습니다. 아내를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제게 천사를 보내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치소에서 교도소로 이감되어 보니 사형수, 무기수들과 같은 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무섭고 이 상황이 억울하고 서러워서 죽고만 싶었습니다. 그러나 곧 마음을 추스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한 방에 있는 다섯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부터 가졌습니다. 주님의 평강으로 저를 지켜 주시고 나아가 이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하였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기도를 마칠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하나님의 꿈을 꾸었습니다.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같은 방 수감자들의 마음을 감동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전례 없이 수감되자마자 방에서 제일 큰 형님 대접을 받고 큰 어려움 없이 지내게 되었으며, 무사히 형기를 마치고 가정과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도우심을 체험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중에, 손녀 아이가 백혈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듣는 참담한 상황에 처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기적만을 바라야 하는 현실에서 잠시 탄식하였지만, 그러나 곧 마음을 담대히 하고 소망 중에 하나님을 앙망하였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하신 말씀을 굳게 붙들고 하나님을 바라며 확신에 찬 기도를 하였습니다. 당회장 목사님께서 기도해 주셨고, 교회의 여러 분들과 또한 금요기도회에 참석한 많은 성도님들이 합심해서 손녀의 병이 낫도록 기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손녀를 치료해 주고 계십니다. 당회장 목사님과 기도해 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며 성실하게 살아가기를 힘쓰자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 경제적인 복도 베풀어 주셨습니다. 반지하 단칸방에서 살던 제가 지금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만들어 주신 아름다운 집에서 찬송을 부르며 이 글을 씁니다. 그동안 다섯 개의 점포를 내고 운영하게 되기까지,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도와주시며 형통케 해주셨습니다.

 

저의 지나온 과거와 그동안 체험한 하나님의 은총을 필설로는 어떻게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저는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루하루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성호를 송축하고 자랑하면서 살겠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