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2019.02.17]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 받는 동안 ... 심은실2019-02-1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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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로 치유 받는 동안 교회의 많은

분들에게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심 은 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해 있던 병실 창문에서 한 눈에 바라보이던 교회, 어쩜 저렇게 아름다운 교회 이름이 다 있을까 생각했던 교회, 제가 우리 은혜와진리교회의 교인이 된지 어언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귀하고 영광스러운 구역장 직분을 받아 20년을 근속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저를 많이 사랑해 주셨습니다. 제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위경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인자와 긍휼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남편과 함께 일하며 쉴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던 저의 삶에 어느 순간 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오른쪽 다리가 균형을 잃고 하늘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현상이 생겨 찾은 병원에서 ‘척추디스크’ 진단을 받았습니다. 시술을 받으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에 시술을 받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길에서 크게 넘어지는 일을 겪는가 하면, 잊을 만하면 무릎과 허리에 통증이 찾아왔습니다. 막내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난 뒤에는 ‘빈 둥지 증후군’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증상까지 생겨 마음마저 병들게 하였습니다.



 



아침에 가족이 출근하고 저녁에 귀가하는 시간까지, 혼자 있는 시간에 갑자기 통증이 엄습하면 무서운 공포감에 사로잡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군에 가 있는 아들과 식구들이 알면 걱정할까 봐 홀로 그 무서움을 감내하며 고통 속에서 지냈습니다. 원래 자존심이 강한 성격에 맏이로 태어나 자라면서 웬만한 일은 참고 견디는 것이 습관화된 탓에 누구에게 말을 못했습니다. 교회에 가면 아는 분들이 “집사님! 왜 이렇게 살이 빠지셨어요? 다이어트 하세요?” 하셨습니다. 그 때마다 “그래요” 하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슬펐는지,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한참 메르스가 온 나라를 공포에 몰아넣고 사람들이 병원에 가기를 꺼려하던 때에, 저는 몸이 하루가 다르게 경직되어가고 통증을 견디지 못해 어떤 날은 아침, 저녁으로 응급실에 가서 통증주사를 맞았습니다. 확실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더 답답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혹시나 하여 산부인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자궁에 선종이 생겼고, 조금만 지나면 암으로 진행되므로 지금 바로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당장 입원을 하고, 곧바로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저는 하나님께서 세심하고 치밀하게 섭리해 주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마냥 집에서 기다리고만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아마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허리에 통증이 재발하였습니다. 권사님과 장로님이 수원에 있는 대학병원을 말씀해 주셔서 일주일 동안 작정기도를 하고 그 병원에 입원하여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습니다. 통증 테스트를 하는데 척추뼈 하나하나에 바늘이 들어가는 그 고통이 칼에 살이 베인 듯 극심했습니다. 독한 진통제도 효험이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견뎠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 계속 수술이나 다름없는 시술을 받았습니다.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병원투어를 다니는 것 같은 제 신세가 참담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움직여 주셔서 주치의, 담당간호사, 병실간호사, 상담사 등 병원의 의료진과 관계자들 모두가 여러모로 저를 배려해주고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을 때 남편이 무릎인대가 파열되어 같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병원의 배려로 저랑 같은 병실에 있으면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부부가 나란히 누워 병원생활을 했습니다. 남편의 모습이 한없이 가여웠습니다. 그 동안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내 몸도 이런데 남편까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갖가지 근심과 걱정에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복대를 차고 생활하는 저의 모습도 싫고 자주 울음을 우는 제 모습 또한 싫었습니다. 치료받는 일이 힘에 겨웠습니다. 자기도 무척 아프고 힘들고 지쳤을 텐데, 자기도 간호를 받아야 할 몸인데 남편은 병실에서 목발을 짚고 생활하면서 정성껏 저를 간호해 주었습니다. 머리감기기, 목욕시키기, 식사 챙겨주기, 환자복 갈아 입히기 등을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해주었습니다.



 



남편이 먼저 퇴원을 하고 그 후 저는 요양병원으로 옮겨 3개월 동안 지루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낮에는 무기력하게 누워있고 밤에는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는 상태로 지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이 오셔서 말씀과 기도를 해주시고, 교회의 병원심방부에서 여러 분들이 오셔서 복음지를 전해주며 기도해 주고 위로해 주시는 덕분에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었습니다. 교구 전도사님과 구역장님들이 오시는 날은 행복하고 밤에 잠이 잘 왔습니다.



 



해를 넘겨 퇴원하고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온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습니다. 제가 있던, 살았던 집의 모습은 사라지고 아주 낯선 공간이 제 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아내와 엄마 없이 생활한 흔적들을 보니 그렇게 참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제 마음이 안정과 평안을 찾으면서 차츰 몸 상태도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한 움큼씩 먹던 약도 어느덧 한 알로 줄어들고 몸의 컨디션도 하루하루 몰라보게 좋아졌습니다. 그러면서 성령님께서 문득 제게 깨닫게 해주신 것이 있었습니다. 전도사님을 찾아가 말씀 드렸습니다. “건강은 회복되어 가는데, 아직 회복이 안 된 것이 있어요.” “뭐예요?” “복음지요!” 전도사님은 환하게 웃어주시며 기도해 주셨습니다.



 



제가 병마와 싸우고 있는 동안 여성봉사연합회 임원 직분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런 후에 허전함이 밀려왔습니다. 그 직분과 수구역장의 직분이 얼마나 귀중하고 감사한 것인지 말로는 다 표현 못합니다. 그러므로 몸이 회복되면 될수록 봉사와 전도를 더 열심히 하면서 결코 뒤로 후퇴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그처럼 그 동안 못했던 것을 만회하기 위해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다 보니 다른 분들의 우려와 달리 오히려 건강이 더 좋아졌습니다. 저를 보면 병원 냄새, 약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주변의 말에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병마와의 긴 싸움이 끝이 났습니다.



 



공황장애, 척추디스크, 빈 둥지 증후군의 모든 질병을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 받았습니다. 저와 가족 모두 성도님들의 많은 기도와 저를 사랑하는 분들의 위로와 격려를 힘입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함으로 제가 건강을 회복하고 가족이 그 모진 풍파를 이길 수 있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제가 겪은 고난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사랑과 권능을 나타내시는 과정이었다고 굳게 믿습니다.



 



하나님은 남편을 남성봉사연합회의 중요한 부서에서 교회를 섬기게 해주시고 아들도 성가대에서 헌신하게 해주셨습니다. 저에게는 여성봉사연합회 봉사팀 부장의 직분과 더불어 예레미야 성가대에서도 봉사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지난해 가을 구역장 세미나에서 당회장 목사님께 영예스러운 구역장 20년 근속상을 받게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한 몸 움직일 수 있는 한 주님께 충성을 다하며, 입술을 열어 말할 수 있는 한 전도에 힘쓰겠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