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2018.12.16] 하나님께서 아들이 교회학교에서 봉사하며 ... 박재순2018-12-16 12:00
작성자

하나님께서 아들이 교회학교에서 봉사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해주시고 해외 제약회사의

연구원으로 취업하여 일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박 재 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시 103:1∼5) 할렐루야!





저는 예배드릴 때마다 당회장 조 목사님께서 주시는 설교말씀에 큰 은혜를 받고 있지만 특히 최근의 주일예배에서 목사님이 이 시편 103편 1절에서 5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교훈해 주신 설교말씀을 듣고 저의 지나온 시절을 회상하며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은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 친구가 밀어서 넘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쳤는데,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셨습니다. 또 기관지 확장증으로 6개월 밖에 살 수 없다는 의사의 선고가 내려졌을 때도, 하나님께서 제 병을 고쳐주시고 제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셨습니다. 이 밖에도 하나님께 받은 은택을 생각할 때 말씀 한 절 한 절의 의미가 마음에 깊이 와 닿고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받는 말씀대로 준행하며 살기로 더욱 마음에 굳게 다짐하였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외갓집 식구들의 영향을 받아 청소년 시절부터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특히 막내 이모님이 저를 많이 예뻐해 주시고 교회에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다른 여느 기독교 가정과 달리 저희 가정은 친정아버지가 먼저 교회에 다니셨고, 친정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늦게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에서 가장 역할을 하는 큰 오빠의 반대와 핍박이 매우 심했습니다. 집에서는 교회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저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마음껏 교회를 오가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환상이 보였습니다. 푸른 초장이 펼쳐져 있고 예수님이 저를 맑은 시냇가로 인도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찬송가 363장으로 하나님께 찬송하였습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내 모든 괴로움 닥치는 환난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주사 넓으신 사랑 베푸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이렇게 찬송하다가 성령님이 감동하여 주셔서 성경말씀을 찾아 묵상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 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는 말씀을 묵상하는데 “언제나 내가 너와 함께 한다”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며, 제 심령에 차고 넘치는 성령님의 위로가 임하였습니다. 그 날부터 저는 믿음의 담력과 용기가 생겨 오빠의 반대와 핍박을 이겨내고 오히려 더 열심히 오빠를 전도하면서 교회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결혼을 할 때 시댁 식구들이 모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여 결혼을 결심하고 시집을 왔더니, 시댁 가족이 이단에 속한 교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 홀로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믿고 섬기면서 많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시댁에서는 우상을 섬기는 시제를 일 년에 한 번씩 지내고 있었습니다. 제사에 쓸 음식을 만드는 일이 제게는 참으로 고통스럽고 하나님 앞에 죄송스러웠습니다.



 



한 번은 제사상에 올릴 과일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을 바라고 기도하면서 칼로 사과에 십자가 모양을 새겨 넣었습니다. 그랬는데 제사를 지낼 때에 제사상 위로 크게 십자가 모양이 떠오르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를 식구들이 함께 보게 되고 한바탕 소동이 일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제사를 마친 후 남편이 “이제 시제를 그만 두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식구들이 이를 받아들여 더 이상 우상에게 절하는 행위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지난 해 6월부터 주일에 우리 교회에 나오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두 아들이 교회학교에서 열심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더니 어느덧 청년이 되어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였습니다. 중고등부에서 봉사하던 큰 아들이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취업할 때의 일입니다. 여러 군데에 입사원서를 내고 시험을 치렀지만 번번이 마지막 3차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여 낙방하였습니다. 그 때마다 아들은 상심하곤 하였지만 저는 낙심하지 않고 아들을 격려해주며 하나님을 앙망하였습니다. 아들의 취업을 위해 저희 모자는 물론, 교구에서 많은 성도님들이 자기 자녀의 일처럼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던 중에 교회학교 수련회에 다녀온 아들이 밤에 꿈을 꾼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어떤 큰 광장에서 자신이 준비한 것을 발표를 하고 사람들에게서 큰 박수를 받는 꿈을 꾸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들은 취업 스트레스로 탈모 증상까지 생겼었는데, 수련회에 다녀온 후 새로 머리가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서 다국적 기업인 크로아티아의 한 제약회사 입사 면접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스펙을 가진 많은 사람이 지원하여 경쟁률이 높았고, 또한 면접관이 모두 미국인이어서 영어로 자신이 연구한 것을 발표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대답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시험을 치르고 돌아온 그날 밤 제 꿈에 아들이 노란봉투를 내밀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기쁘고 소중한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저는 아들의 합격을 확신하였습니다.



 



아들은 그 입사 시험에서 최종 합격하였습니다. 나중에 합격자 면면을 보니 모두가 박사와 석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제 아들은 생명과학 학부에서 4년간 화학을 전공하여 즐겁게 공부했을 뿐 박사도, 석사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 아들은 연구원으로 합격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영업직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들은 현재 그 제약회사의 연구원으로서 크로아티아 외에도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활발하게 연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판교성전에서 수구역장과 여성봉사연합회 임원의 직분으로 교회와 구역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사랑과 헌신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당회장 목사님께서 축복해 주신 바와 같이 날이 갈수록 하나님의 은택을 체험하는 분량이 많아지며 깨닫는 깊이가 더하여지고, 천국에 가는 날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생활을 지속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