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2018.03.25] 돌아온 탕자를 따뜻...최광준2018-03-25 13:3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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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탕자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시고 고난과 역경이 유익이 되게 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최 광 준



 



▶하나님께서는 제가 겪은 극한 시련을 통해서 자아를 철저히 깨트려주시고 회개하게 하셨고, 저를 연단하셔서 속사람을 강건하게 변화시켜 주셨으며, 고난이 유익이 되는 은혜를 체험하게 해주십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를 따라 금요기도회에 처음 참석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회장 목사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자양분으로 믿음이 자라서 군에서 전역할 때까지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차 신앙생활을 등한히 하더니 결국에는 쭉정이 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안타까우셨는지, 돌이키도록 성령님께서 여러 방법으로 책망하시며 제 삶에 경고등을 켜 주셨지만 저는 끝내 하나님의 품을 떠나 타락의 강을 건너고 말았습니다.



 



금융위기 사태로 하던 사업도 접고 가만히 있는 것이 돈 버는 것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던 9년 전에, 저는 오히려 부산의 아파트 신축공사장의 식당운영권을 따내서 처음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후 4년 동안 강릉에서의 골재 채취업과 가스관로공사 골재 납품업에 이어 마지막에 서울에서 사채업에 손을 대는 등 4번의 사업을 벌였다가 모두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전 재산을 잃고 가족들에게는 집안의 역적이 되다시피 하였습니다. 술로 괴로움을 달래면서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내일 아침에는 눈 뜨지 않게 되기를 바랄 정도로 괴롭고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이자를 갚을 날이 다가오면 피가 마르는 것 같았습니다. 조폭 같은 사채업자들에게 갖은 수모를 겪었습니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이야기가 저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를 이렇게 만든 자들에 대한 원망과 원한의 생각 대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시고 다시 나를 부르시는구나.” 그러면서 눈에서 폭포수같이 회개하는 눈물이 쏟아지고, 입에서는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라는 찬송 소리가 나왔습니다.



 



그 동안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이전의 신앙 상태로 돌아가는 것보다 지구가 멸망하는 것이 더 쉽고 빠를 것’이란 말을 공공연히 말할 정도로 심령이 강퍅하였습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 6:4∼6) 한 말씀이 바로 저를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탕자와 아버지의 비유’처럼, 하나님께서 무한한 사랑으로 맞아주시고 아버지의 따뜻한 품에 안아주셨습니다. 웬 말인지, 웬 은혜인지 저 같은 죄인을 다시 받아주셨습니다. 요즘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다”라고 속으로 외치기만 해도 심령에 희열이 넘쳐나는 것을 느낍니다.



 



즐기던 술과 세속적인 것을 단 번에 끊고 20년 만에 교회에 와서 수요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그 날 당회장 목사님께서 출애굽기 강해로 설교해 주셨는데 그 말씀을 들으며 얼마나 기분이 묘하고 마음이 새롭고 은혜가 넘쳤는지, 말로 표현이 안 되는 황홀함을 맛보았습니다.



 



현실은 냉혹해서 서울 면목동에 반지하 방을 얻어 이사를 하고 구리성전에 교적을 등록하여 열심히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생계를 위해서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고 낮에는 차량 탁송 일을 하느라 심신은 고달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혼을 살찌우는 재미로 지냈습니다. 요셉처럼 무슨 일을 하든 성실하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4년을 보내는 와중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셨습니다. 어떻게 손을 써보고 돌파구를 마련해 볼 수도 없는 참담한 현실에서 저는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면서 절실하게 도움을 호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로 저를 시험하시고 제 마음을 연단하셨습니다.



 



다시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을 한 후 2년까지는 잃었던 집과 재산을 어서 빨리 되찾아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배를 드리던 중에 설교말씀과 성령에 감화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이제는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살아야지.” 그 순간 성령께서 제 마음에 신령한 기쁨이 충만하게 해주셨습니다. 그 일 이후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조급했던 마음에 여유가 생기며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때가 되면 제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는 성격이 예전에 비해서 많이 온유해지고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게 되었으며, 이웃을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자로 변하였습니다. 만물을 볼 때 예사로 보지 않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섭리의 손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구원 받은 것을 생각하면 어떤 형편과 상황에서도 무조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만사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복음전파를 위해서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겠노라고 다짐하였습니다. 말씀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하심이 저를 그렇게 변화시켰습니다.



 



5년 동안 하나님이 저의 심장을 살피시고 저의 폐부까지 시험하시는 그 연단의 불을 통과했으면서도 아직도 제게 불순물이 남아있고 여전히 갈대와 같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많이 느끼며 애통해 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늘 함께 해주심을 느끼며 수시로 하나님께 묻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기도하고 뜻한 대로 잘 되지 않아서 “하나님! 저의 기도가 기복에 치우치고 요행을 바라는 기도이기 때문인가요? 저의 믿음이 온전치 않기 때문인가요?”라고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성령님께서 “아니다. 더 인내하라”며 위로와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주일예배에서 당회장 목사님이 우리가 어떠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분별하게 해주는 설교말씀을 해주셨습니다. 2600년 전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에게 꿈을 통해 계시하시고 다니엘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어 성경에 기록한 대로 이스라엘의 건국 과정 등 그동안 진행되어 온 세계사의 전개과정과 이제 남은 일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전능하심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더 인내하게 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 또한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는 말씀을 생각하게 해주셨습니다.



 



거듭된 사업 실패로 완전히 망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온 지 만 5년째가 된 올해 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환경의 문을 활짝 열어주신 것입니다. 경매로 넘겨야 했던 아파트와 상가가 원래는 재개발 구역이었고 그 추진 과정에서 건물의 등기가 말소되는 행정착오가 있었던 것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실수였든 착오였든 법원의 잘못을 바로잡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저의 큰 채무가 한 번에 해결되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덤덤하다가 잠시 시간이 지난 후 만감이 교차하여 왈칵 눈물을 쏟았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성도가 하나님 면전의식을 갖고 생활하면, 하나님 편에 서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하나님이 책임져주시고 환난이 복이 되며 고난이 유익이 되게 해주신다는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준행하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그런 저를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고 저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 등골이 오싹해지고 머리카락이 서는 체험을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아직 저에게는 여러 가지 기도 제목이 있고 이루어야 할 크고 작은 목표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기도하고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왕 같은 제사장요,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견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장 작은 자’라고 늘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바울의 고백과 다르게 저는 정말 그러합니다. 나이가 쉰인데 아직 장가도 못 갔지, 모아둔 재산도 없지, 직업과 외모와 배경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말할 수 없이 행복합니다. “나보다 행복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외칩니다. 이 주체 못하는 기쁨과 자존감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