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2017.02.05] 뇌성마비 장애를 이기고 피...김경민2017-02-05 16:19
작성자

뇌성마비 장애를 이기고
피아니스트로 활발히 활동하며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김 경 민

 

 

 ▶ 1981년 5월 어느 날, 한 가정에 쌍둥이 남자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부모님께서는 한 번에 아들 둘을 얻었다며 한없이 기뻐하셨고 다른 가족들 모두 마찬가지로 좋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백일이 지나자 그 기쁨이 근심으로 변하였습니다. 왜냐하면 5분 늦게 동생으로 태어난 저에게 뇌성마비 장애가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저를 고쳐 보겠다고 병원이란 병원을 다 찾아 다니셨습니다. 그러다가 의술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부모님은 여러 차례 집으로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저는 몸에 좋다는 온갖 약을 다 먹어보고 어리고 병약한 몸 상태로 온몸에 침을 맞는 고통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제가 5살이 되었습니다. 당시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에다가 속병까지 있으신 아버지께서는 편치 않으신 그 몸으로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일해서 벌어 오시는 돈의 대부분이 저를 비롯한 식구들의 약값으로 지출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도 밖에 나가 일을 하셔야 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는 미싱 일을 하셨는데, 저희 집 근처의 한 집사님 댁에 가서 일하셨습니다.

 

그 때에 어머니가 독실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섬기는 집사님 댁에서 일을 하시게 된 것은 저와 저희 가족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이셨습니다. 집사님 가족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을 보고는 어머니가 몹시 부러워하셨고, 어머니에게 예수님을 믿고 싶은 마음이 생기셨습니다. 그리하여 어머니와 저희 형제들이 집사님을 따라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다섯 살인 저는 팔과 다리가 구부러져 있어 혼자 힘으로는 걸을 수가 없는 상태였으며 또한 침을 삼키지 못해서 입에서 침이 줄줄 흘러내리기 일쑤였습니다. 발로 걷지 못하므로 엉덩이로 길을 쓸고 다녀서 항상 제 옷에는 먼지가 잔뜩 묻어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으로 제가 집사님 댁에 오가는 것을 집사님은 조금도 싫은 내색 없이 반겨주셨고 늘 저와 어머니를 사랑으로 돌보아주셨습니다. 어머니와 저희 형제는 하나님께 예배하며 믿음이 자라가고, 따스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끼며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어머니는 저를 위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한편으로 매일 같이 제게 운동을 시키셨습니다.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화장대를 잡고 앉았다가 일어서기, 일어서서 벽에 기대고 등을 폈다가 다시 앉기 등 여러 가지 운동을 거듭하였습니다. 그러자 단단하게 굳어있던 제 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해서 2년 후 7살이 되었을 때는 저 스스로 걸음마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만도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나 힘이 들어서 어머니와 어린 저에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아마도 중도에 포기해 버렸을 것입니다.

 

그 후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제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특수학교를 다녀야 했지만 당시 살고 있던 대전에는 제가 다닐만한 학교가 없어 학교를 찾아 이곳 안산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안산에 와서 부모님이 한식당을 운영하셨는데, 식당 바로 옆 건물에 피아노 학원이 있었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식당 주변에서 놀이를 하는 중에 매일 같이 학원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특히 저녁 시간이면 직접 원장님이 쇼팽의 곡들을 연주하시곤 했는데 저는 그 피아노 연주 소리에 점차 매료되었습니다.

 

저는 피아노가 너무도 배우고 싶은 마음에 어느 날 무조건 학원에 찾아갔습니다. 원장님이 두 눈이 휘둥그래 지셔서 한동안 놀란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시더니 “여긴 무슨 일로 왔니?”하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피아노가 너무 배우고 싶어서 왔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의 간절한 마음을 아시고 원장님께서 흔쾌히 저를 받아주셨습니다. 저는 양손가락에 경직이 심해서 처음에는 건반을 주먹으로 쳐야 했습니다. 손가락을 펴기 위해 연필로 손가락 마디를 고정시킨 후 건반 치는 연습을 반복하였습니다.

 

너무 힘들고 어려웠지만 저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피아노 연주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또 이제 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분명히 예수님께서 저를 도와주셔서 반드시 꿈을 이루게 해주실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피아노를 배운지 3년 만에 손가락을 모두 펴서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피아노와 인연을 맺고 이후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뇌성마비를 앓는 제가 제법 이름 난 피아니스트가 되었습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우리 교단의 신학교에 입학하여 막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던 2006년 겨울이었습니다. 그 때 우리나라에도 UCC(사용자가 직접 제작한 콘텐츠를 상업적인 목적 없이 온라인상으로 올리는 것)가 들어와 인터넷에 수많은 동영상이 올라오고 사람들이 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도 제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직접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 올렸습니다. 저처럼 장애를 가진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에도 국내에 저와 같은 장애인 연주자가 많이 있었지만 일반인에게는 이들이 생소하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처음 장애인 연주자로서 세상과 소통하며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여러 신문과 방송에서 저를 궁금해 하여 취재와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였습니다. 저는 하루아침에 소위 말하는 UCC 스타가 되고, 이후 뇌성마비 피아니스트로 활발히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소속사가 생기고 다양한 문화활동을 통해 소외된 이웃들을 돕는 문화외교자선단체인 “사단법인 뷰티플 마인드”에 속하여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 단체의 일원으로 오대양 육대주 세계 50여 국가를 순회하며 2백여 차례 공연을 하였고, 국내에서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공연을 하였습니다.

 

오늘도 피아노 연주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전 세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기쁨이 충만합니다. 지난해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직접 12곡을 작곡하고 연주하여 제작한 솔로앨범 ‘사랑과 추억’을 발표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청년봉사선교회의 수화교실과 정보통신선교회에서 봉사하고, 지금은 북한선교회를 열심히 섬기고 있습니다. 직접 차를 운전하여 다니고 장시간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제게 건강을 주셨습니다. 최근에는 당회장 목사님께서 주일 오후1시예배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기회를 주셔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제가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여겨질 정도로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 드리며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3)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8:17)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