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2018.10.14] 탕자와 같았던 저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한수전2018-10-1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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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와 같았던 저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따뜻하게

품어주시고 예배중심, 교회중심의 생활을 하도록

변화시켜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감사 드립니다.”

 

한 수 전



 



▶ 저는 서울에서 살 때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섬기는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대구에서 살다가 안양으로 이사를 온 후, 우리 은혜와진리교회의 교인이 되었습니다. 안양으로 이사 올 때 저는 몸과 마음이 더할 수 없이 지친 상태였습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인하여 방 한 칸 얻을 돈도 없이 무작정 친정 곁으로 왔습니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저는 생계를 위해 직장에 다녔습니다. 고된 직장일과 집안일을 하느라 주일에 교회에 오면 예배 시간에 졸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생활을 지속하던 중에 구역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역장이신 권사님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제게 많은 격려와 도움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믿음이 조금씩 자라가고 예배 드리러 교회에 가는 저의 발걸음도 잦아졌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한 성경말씀처럼, 당회장 목사님의 설교를 자주 들으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깊어지고 마음에도 주님의 평강이 임하면서 내일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 제게 구역장 직분을 주셔서 복음을 전하며 구역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직장에 다니는 성도 한 분과 구역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성도님이 야간에도 일할 때가 많아 자주 예배를 빠지더니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저는 한동안은 혼자서라도 예배를 드리다가 나중에는 구역예배를 드릴 생각조차 안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가서도 교구실에 들르거나 다른 구역장님들과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되었습니다. 교구 전도사님이 연락 주시면 잠간 교구실에 들리는 등 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사는 데 급급하고 신앙생활을 건성으로 하다 보니 갈수록 믿음은 약해지고,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런 중에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질병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하루는 양치질을 하는 중에 저도 모르게 ‘악!’ 하는 소리를 냈습니다. 갑자기 번개가 치고 전기가 통하듯 아주 세게 찌르는 듯이 아팠습니다. 이러한 찌릿함 때문에 세수를 할 수 없었고 밥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치아에 이상이 생겼나 보다 하고 치과에 갔더니 치아의 상태는 매우 양호한 것으로 보아 신경에 이상이 있을지 모르니 종합병원에 가보라고 하였습니다. 종합병원에 가서 MRI 검사를 받은 결과 ‘3차신경통’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병원에서는 치료가 어렵다며 대학병원에 가라고 하였습니다. 이튿날 찾아 간 대학병원에서도 똑 같은 말만 했습니다. 저는 그제야 제 병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인터넷으로 전문병원을 찾아보았습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진료 예약을 해놓고는 당장 씻을 수도 없고 식사도 할 수 없어 우선 가까운 곳에 있는 통증클리닉에 가서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소개해 준 병원에 찾아가서 ‘당신 같은 환자 2천명도 넘게 시술해 주었다.’고 말하는 원장 선생님에게 믿음이 생겨 곧바로 입원을 하고 시술을 받았습니다. 시술은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마취를 하지 않은 채로 얼굴에 주사 바늘 통 같은 관이 들어가고 그 안에 주사 바늘로 알콜을 주입하여 신경을 마비시키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은 차라리 그만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붓지 말라고 얼음찜질을 하면서 며칠 만에 밥을 먹는데, 시술 받은 쪽은 감각이 없어 씹어도 씹히지가 않고 입 안쪽을 깨물어도 아무 감각이 없고 입 바깥으로 음식물이 흘러내리는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다른 한 쪽으로 조금은 먹을 수 있으니 그것도 감사했습니다. 저는 그 한 번으로 치료가 될 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채 1년이 지나기도 전에 재발하였습니다. 그 후 1년에 한 번 꼴로 시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삶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있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로서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관양동 동편마을로 이사를 하고, 교적은 옮기지 않은 채 여전히 나 홀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2014년 송구영신예배에 참석을 하고 집에 가기 위해 교구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그 때 수구역장님이 저에게 다가오셔서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사 오셨어요?” 하고 물으시고는, 몹시 반가워하시며 ‘교적부터 옮기고 앞으로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잘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그 후 수구역장님은 한시도 저를 가만 두지 않으셨습니다. 월요기도회, 구역장 기도회, 수요예배, 금요예배, 에스더 기도회에 참석하도록 저를 이끄셨고, 주일에도 예배를 마치면 봉사하시는 선교회로 데려가셨습니다.



 



수구역장님이 이끄시는 대로 무조건 “예!”하고 따라다니며 모든 예배에 참석을 하고 한 분 두 분 성도님들과 인사하고 교제하다 보니 제 마음에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복음지를 들고 나가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으세요!” 하며 전도하는 신령한 즐거움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선교회에 갈 때마다 부장 장로님을 비롯하여 권사님, 집사님들이 주님의 사랑으로 반겨주고 보듬어 주시는데, 마치 암탉이 병아리를 품어주는 것 같고 친정집에 온 것처럼 제 마음이 푸근하였습니다. 그 동안 신앙생활에 열과 성을 다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열심히 예배 드리고 열심히 기도하고 또 열심히 이웃을 섬기며 교회에 충성하고 헌신 봉사하는 이 분들처럼 저도 주님께 받은 사랑에 감사하고 또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성도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한 사도 바울의 고백에 감동하고 하나님의 베풀어 주신 모든 은총에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고 구역장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아직도 구역장의 귀한 직분을 맡기에는 많이 미숙하고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순종하고 최선을 다하면 때를 따라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을 더해 주시고 도와주실 것을 믿고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끝까지 사명을 잘 감당해서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 하시는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저를 붙드신 그 손을 놓지 아니하시고, 죄 많고 허물 많은 저를 무한한 은혜와 사랑으로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 2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