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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7.05.14]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조점숙2017-05-14 16: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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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조 점 숙

 

 

▶저는 1972년 봄에 시할머님과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7남매의 장남과 결혼하였습니다. 중매한 분의 말만 믿고 결혼했는데, 결혼하고 나서야 여러 가지로 그분의 과장이 너무 심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후 4남매를 낳고 살았습니다. 부양할 식구는 많고 생활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갖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전형적인 농촌가정이었던 시댁에서는 갖가지 우상숭배 행위를 하였습니다. 식구들이 절에 다니는가 하면 자주 무당을 불러 굿을 하였습니다. 가을에는 고사떡을 해서 귀신에게 복을 빌고 이웃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 때마다 시어머니는 집터를 지켜준다는 귀신을 모신 터주대와 장독대와 다락에까지 항아리에 쌀을 담아 놓고 또 청수와 떡을 놓고서 복을 빌었습니다. 심지어 변소 귀신에게까지 떡을 바치는 황당한 일도 하였습니다. 층층시하의 어른들에게 무조건 순종해야만 하는 집안 분위기에서 저의 생활은 마치 이조시대 여인의 삶을 방불케 했습니다. 그렇게 8년의 세월을 보내고서 서울로 분가하였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서울에 올라왔지만 월세방 하나를 얻기도 어려웠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아이들이 많다며 쉽게 방을 내주질 않아 간신히 추녀 끝에 부엌을 달아 만든 방 한 칸을 얻어 서울살림을 시작하였습니다. 남편은 직장에 다니고 저는 집에서 부업을 하였습니다. 비록 몸은 고달팠으나 마음만은 시댁에서 생활할 때보다 한결 편했습니다. 얼마간 저축도 하면서 그런대로 행복하였습니다.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가나 싶었는데, 남편이 갑자기 아프기 시작하여 더 이상 직장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직장을 그만 둔 남편이 수원에 사는 누님이 집을 사서 이사하는데 축하한다고 다녀오더니 저희도 수원에 가서 살자고 하였습니다. 연탄소매업을 하던 시누이 남편이 취직하여 그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 일을 남편이 물려받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누님 가족에게 신세지는 것이 도리가 아니고 마음도 편치 않을 것 같아 이를 반대하였습니다. 더구나 몸도 성치 않은 남편인지라 더 만류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결심한 남편의 고집을 꺾지 못했습니다. 먼저 내려간 남편을 뒤따라 저도 초등학생 큰 딸을 전학시키고 수원으로 내려왔습니다.



 



처음에는 연탄 배달 리어카를 뒤에서 밀어 주며 남편을 돕는 정도였으나 나중에는 남편을 제쳐두고 저의 본업이 되었습니다. 원래 몸이 아픈 데다 힘겨운 노동에 지친 남편이 술과 담배를 시작하더니 낮에도 술에 취해 방에 들어가 잠을 자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저의 심신도 하루하루 지쳐갔습니다. 집안에서는 6식구를 보살피는 살림을 해야 하고, 밖에서는 하루에 연탄 1,500장을 리어카에 싣고 동네 좁은 골목길을 다니며 지하실 연탄창고 등에 쌓는 그 험한 일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남편은 자고 있고 큰 딸아이는 동생들을 보살피다 간신히 재우고는 혼자서 숙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제 마음이 말 할 수 없이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그렇게 심신이 곤고한 중에 매 주마다 은혜와진리소식지를 받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3년 3월 1일자 소식지에 성령대망회 광고가 실린 것을 보고 무언가에 이끌리듯 만사를 제쳐두고 그 성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주제로 한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듣고 제 마음이 감화 감동되었고, 함께 소리 내어 기도하는 시간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다 쏟아냈습니다. 제가 지금 겪는 역경과 아픔쯤이야 나를 위해 예수님이 당하신 그 고난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회개하고 또 여러 가지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민망한 줄도 모르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 날 성회가 끝나 밖으로 나오며 맡는 공기가 그렇게 신선할 수 없었습니다. 길 가의 풀 한 포기에도 생명력이 넘쳐 보이고 가녀린 꽃잎에서도 예전에 맡아보지 못한 향기가 났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며 좌절하여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그만 죽음까지 생각했다가 어린 4남매의 눈망울을 보며 그마저도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시려고 그처럼 저를 바닥까지 낮추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하셨나 봅니다.



 



그 때부터 저는 우리 교회 수원성전에 출석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며 사랑하는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슬픔과 절망의 삶이 감사와 소망의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당회장 목사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삼아 때마다 위로와 축복을 받고 갖가지 크고 작은 소원을 이루는 기도응답을 체험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고 영육 간에 강건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위한 저의 눈물의 기도에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시므로 93년도에 남편도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은혜로 술과 담배를 끊고 집안에서 가장 역할에 충실하게 되었으며, 교회에서는 안수집사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남성구역장으로서 20여 년을 근속하며 교회와 성도님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 사이 저도 권사 직분을 받았습니다.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저희 온 가족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98년도에 시부모님을 수원으로 모셔온 뒤로 시부모님도 예수님을 영접하여 신앙생활을 하시다가 몇 해 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천국에 가셨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께 감사 드릴 이유가 너무도 많지만 감사 중의 감사는 저희 가족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저는 이 찬송가 23장으로 아침저녁마다 즐겁게 노래하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삶의 소망을 잃어버리고 낙심하고 지쳐있던 저에게 찾아오셔서 진정한 삶의 이유가 되어주시고 때마다 큰 힘과 위로가 되신 주님, 저와 가족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기업으로 주신 주님,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교회와 성도님들을 섬기게 해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남은 생애가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늘 감사하고 찬송하면서 오직 우리 주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하여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