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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7.06.04] 지독히도 우상숭배를 하던...이효순2017-06-04 15:4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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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히도 우상숭배를 하던 친정어머니를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고
천국에서 복락을 누리게 해주셨습니다

 

이 효 순

 

 

▶저의 어린 시절에 어머니는 절에서 생활하다시피 하셨습니다. 가난하던 그 시절에 어머니의 친정 사촌 올케 되는 분이 절을 관리하고 있던 덕분에 절에서 일을 하며 얻는 공양밥으로 식구들 끼니를 때우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중에 4살 된 제가 하루는 절에서 놀다가 우물에 빠져 죽을 번한 일이 벌어졌고, 그 일로 어머니는 절에서 하던 일을 그만두셨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도리어 제 목숨을 부처가 살려주었다고, 사촌 올케가 살려주었다고 노래 부르며 더 극성스럽게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얼마 후 절이 불에 타 없어지며 사촌 올케 집안이 하루아침에 몰락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저희 동네에도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제가 7살이 되었을 때에 저희 작은 시골마을에도 한 작은 교회당이 세워지고 새벽마다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어린 저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에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가 열려 어머니 몰래 교회에 가서 창문으로 예배당 안을 엿보았습니다. 그곳은 천국이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승리를 얻었네∼.” 찬송가 가사와 곡조가 제 머릿속에 또렷이 각인되며 모여서 찬송하는 아이들이 몹시 부러웠습니다. 한 친구가 저를 발견하고는 나와서 교회당 안으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교회당 한 쪽 벽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담긴 성화가 첫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런 예수님이 너무 불쌍했습니다. 그리고 채찍질하는 로마 군병들이 몹시 미웠습니다. 집에 돌아가서는 그 모습만 떠올랐습니다. 계속 교회에 다니고 싶었지만 ‘너는 절에서 다시 살아났으니 교회에 가면 죽게 될 것’이라는 어머니의 반대로 그러질 못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서울로 올라와서 언니 집에 머물며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고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이 많으신 한 집사님의 도움으로 교회에 다니며 성경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작은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셨는데, 그곳에 들른 제가 가게 안 사방에 성경 구절이 빼곡히 적혀 있는 것을 보고 교회로 데려가 달라고 먼저 요청하였습니다. 집사님의 도움으로 교회에서 예배와 성경공부와 청년부 모임에 열심히 참여하고 성가대에서 봉사도 해보았으나, 은혜를 받지 못하고 믿음이 자라질 않아 결국 중도에 그만두었습니다.



 



혼기가 되어 하나 둘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어머니의 성화를 견딜 수 없어 배우자감을 소개 받아 보고 선도 보면서 좋은 혼처도 나타났지만 제 맘이 내키질 않았습니다. 집사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님을 믿는 집안으로 시집가야 한다.”며 당부한 말이 기억났습니다. 그러던 차에 인연이 나타났습니다. 지금의 제 남편입니다.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한 번 저를 보고는 마음에 들어 한 남편이 친구를 졸라 둘이 만남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전에 친구를 통해 알아보니 본인은 불신자이지만 부모님 두 분은 신실한 기독교인이셨습니다. 소개 받는 자리에서 자기는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지만 앞으로 노력할 것이며 제가 신앙 생활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한 말만 믿고 결혼하였습니다.



 



결혼하고 보니 큰 시련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과연 시어머님은 독실한 신앙심으로 주님을 섬기고 계셨고 시아버님 또한 일찍이 주님을 영접하시고 예배에 충실하신 분이셨지만 남편은 정반대였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세상과 재물을 사랑하고 친구와 술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래도 시어머님과 함께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기에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점점 분란이 잦아지고 그런 남편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밤마다 악몽을 꾸며 제 몸과 마음은 병들어 가고 경제적인 어려움 또한 가중되었습니다.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며 힘겨운 영적 싸움을 하였습니다. 이런 저를 안타까워하신 수구역장님의 손에 이끌려 구역장기도회에 처음 참석하였습니다. 많은 구역장님들이 모여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 또 여러 가지 기도제목으로 뜨겁게 기도하는 그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도 전에 없던 간절함과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 후 아동구역장 직분을 받고 순종하여 헌신하는 중에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때부터 받는 말씀이 모두 은혜가 되고 신앙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말씀을 들어도 잘 깨닫질 못했었는데 이제는 당회장 목사님이 주시는 말씀이 제 심령에 압도적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충성스럽게 직분을 감당하자 5명, 10명, 20명으로 아동구역이 크게 부흥하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마귀의 유혹이 다가왔습니다. 저희 가게가 진 빚을 직접 해결해보려는 생각에 저도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직분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리가 아파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그 사이 이직한 남편은 새 직장에서 힘써 일만 하고 월급은 받지를 못해 빚은 오히려 더 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서 다시 믿음과 사랑의 열정을 회복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 제게 이번에는 성인구역장의 직분을 주시므로 새로운 결심과 각오로 충성하며 헌신하였습니다. 그러자 구역에서 세 분의 아동구역장과 두 분의 성인구역장이 세워질 만큼 짧은 기간에 구역이 크게 부흥되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우상숭배에 젖어 사는 친정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극에 달하게 되었고, 어머니를 전도하기 위해 전에 없던 열심으로 기도하며 애썼습니다. 어머니의 심령은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복음을 배척하고 지극정성으로 우상을 섬기며 재물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셨습니다. 친정집에 식구들이 모일 때면 돈 이야기, 제사 이야기, 조상 자랑 뿐이었습니다. 성품은 착했지만 경제력이 부족한 남편을 어머니와 식구들이 무시하여 제 마음을 더 아프게 하였습니다.



 



그런 중에 제 배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난소에 혹이 자라고 있어 그 혹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잠시 하나님께 원망의 마음도 일었지만 오래지 않아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종양 제거 수술을 잘 받았습니다. 수술을 받은 후 마침 봄 전도대회 기간이어서 아픈 몸을 이끌고 친정어머니를 교회로 모시고 와 결신케 해드렸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었겠지만 병약해진 제가 ‘죽은 사람 소원 들어주지 말고 산 사람 소원 들어 달라’며 강권하자 마음이 약해지신 어머니가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신유와 축복의 기도 시간에 당회장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아프던 허리가 낫게 되는 신령한 체험을 하시고는 ‘정말 하나님이 계신가 보다.’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시골로 내려가시자마자 우상숭배를 그만 두고 교회에 다니셨습니다. 어머니의 나이 82세였습니다. 어머니는 저보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다가 지난 겨울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천국에 가셨습니다. 병상에서 숨을 거두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직 구원받지 못한 가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남편도 구원하셔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을 하게 해주셨습니다. 저에게도 수구역장의 직분을 주시고 더한 즐거움과 감사함으로 주님의 일에 헌신하게 해주십니다. 받은 은혜와 직분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욱 예배와 봉사와 전도에 힘쓸 것을 다짐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