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2019.11.17]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탕자를 품에 안아 주시고...김화2019-11-17 12:00:10
작성자 Level 10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탕자를 품에 안아 주시고,

설암(舌癌)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김 화




▶저는 서울에서 부모님 슬하 5남매 중 맏딸로 태어나 자랐습니다. 건축일을 하는 아버지가 술을 워낙 좋아하고 주사가 심하셔서, 살림살이를 부수며 술주정을 하는 날이면 온 가족이 집 밖으로 도망을 가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초파일에 아버지 손에 이끌려 절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건축기술이 좋은 아버지가 그 절을 지은 연고로 초대를 받아 갔는데, 어린 마음에도 절이 무척 싫었습니다. 기이한 형상의 그림이 무섭고, 대접받는 절밥을 한 숟갈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할 때면 교회에 다니지 않아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여름에는 아버지의 일이 많아 풍족하게 지내다가 겨울에는 일이 없어 궁핍했습니다. 술주정을 하는 아버지, 저축할 줄 모르는 엄마,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는 저희 가정이 창피하고 싫었습니다. 중학생 때는 홍제동 시장에서 일수놀이를 하는 어머니 대신 저녁에 돈을 받으러 다녔습니다. 저에게 꿈이 있었습니다. 스튜어디스가 되어 마음껏 하늘을 나는 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맏딸인 제가 어서 빨리 돈을 벌어 고생하는 어머니와 4명의 동생을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 꿈을 접었습니다. 70년대 초반 당시에 일본경제가 번영하고 일본제품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던 때라 일본어를 배워 가이드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종로 학원가에서 다닐 학원을 알아보던 중에 강원도에서 일을 하던 아버지가 오랜만에 집에 오셔서 그곳 건축주에게서 받을 돈이 있다면서, 함께 가면 학원비를 내도록 그 돈을 받아주겠다면서 저를 데려가셨습니다. 가서 보니 거짓말이었습니다. 신랑감을 봐 놓으시고 저를 시집 보내려고 속여서 데려가신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싫다고 애원해도 소용없었습니다. 두 달 만에 결혼하였습니다. 1973년, 제 나이 20살 때였습니다. 3년 후에 분가하여 부천에 살면서 남편은 건축 관련 일을 하였습니다. 당시에 전철 경인선이 개통하고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되어 건축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술과 도박을 즐기기 시작하고 생활비를 주지 않았습니다. 맏딸이기에,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힘들어도 참고 견뎠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더 바깥으로 돌고 생활비를 달라는 저에게 폭력을 쓰기까지 하였습니다. 제가 수면제를 한 움큼 먹고 병원에 긴급 이송되었다가 간신히 깨어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퇴원하고 집에 와서 아이들을 보니 한없이 미안하고 불쌍했습니다.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보며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고 슬피 울었습니다. 결심하고 스스로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1980년 1월 1일이었습니다. 작은 개척교회여서 목사님과 사모님을 따라서 전도와 심방을 다니고 구역장과 성가대원으로 봉사하였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동안에는 근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부업으로 학습지 돌리는 일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다가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가자 더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변하기는커녕 갈수록 더 횡포가 심해지는 남편 때문에 불화가 잦았습니다. “하나님! 더 이상은 인내하지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남편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만 헤어질 결단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돈을 벌어서 아이들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남편의 방탕한 생활 때문에 결국 남편과 헤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어리석게도 교회를 떠났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고 생활이 안정되면 제 의지로 다시 교회에 나오고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방위산업체인 큰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일은 힘이 들었지만 월급과 상여금이 많아서 생활이 나아졌습니다. 학자금 지원까지 받을 수 있어서 아이들 학비 걱정을 안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회사가 창원으로 이전하므로 퇴직을 하고 부천 중동에 피부관리샵을 열었습니다. 같은 일을 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원장들과 어울리면서 돈 버는 일에 급급했습니다. 심지어 무당을 찾아가 점을 치고 사업이 잘되게 해달라고 굿을 하는 등 우상을 숭배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사업이 잘되어서 주변에 큰소리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집에 오면 무척 외롭고 마음이 우울했습니다. 사업이 잘 되자 여기저기에 투자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곧 IMF 경제위기가 닥치고 사업장도 수입이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결혼도 시켜야 하는 데 카드빚은 자꾸 늘어가고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길에서 우연히 전에 같이 교회생활을 했던 전도사님을 20년 만에 만났습니다. 주일 아침마다 전화하여 교회에 나오라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간곡하게 말씀하며 기도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교만하여 따르지 않았습니다.




갈수록 부채가 늘고 어떻게 사업체를 정리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호주에서 유학하던 딸이 교제 중인 대만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남자가 결혼 준비를 다 한다면서, 저 보고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딸의 결혼식을 치른 이듬해에 아들도 결혼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품을 떠나 탕자처럼 살고 있는 저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며 기다리고 계심을 깨달았습니다. 피부관리샵을 정리하여 시흥시로 이사하고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2012년 10월에 혀 가장자리에 염증이 생겨 이비인후과와 치과에 다니며 치료를 받았으나 낫지를 않았습니다. 염증 부위에 찌릿찌릿하는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서울대학병원에서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합니다. 수술을 할 수 있는 것만도 다행입니다. 당장 입원하여 여러 가지 검사를 받으십시오.” 하였습니다. 설암 말기에 암세포가 목의 임파선 3곳으로 이미 전이된 상태였습니다. 국립암센터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습니다. 애통하여 울고 하나님께 죄송해서 또 울었습니다. 칼로 살을 도려내듯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나님! 제 생은 여기까지군요. 그동안 너무 외롭고 삶이 고달팠습니다. 아이들도 결혼시켰으니 이제 세상에 미련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그때가 너무나 두렵습니다.”




감사하게도 가까이에 은혜와진리교회가 있었습니다. 수술을 받기 열흘 전부터 은혜와진리교회 시흥성전에 가서 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교구실에 가서 저의 사정을 말씀 드리고 기도를 부탁 드렸습니다. 전도사님과 목사님이 친절하게 맞아주시고 간절히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곧 당회장 목사님이 오셔서 축복성회를 인도해 주신다면서 예배에 꼭 참석하라고 하셨습니다. 예배에 참석하여 당회장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듣고,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 날 후로 불안감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수술이 잘 될 것이란 확신이 생겼습니다. 마침 고난주간이었습니다. 매일같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울고 회개하면서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2013년 3월 27일 아침 8시에 첫 번째로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목을 Y자로 열어서 혀의 절반을 잘라내고, 목의 임파선 53개를 잘라내고, 손목 살을 떼어 혀에 이식하고, 허벅지살을 떼어서 손목에 이식하는 대수술을 15시간에 걸쳐서 받았습니다.




수술을 받는 중에 저는 살아계신 주님을 뵙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 기이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깨어났을 때 혀는 부어서 입안에 꽉 차 있고, 왼쪽 손목과 허벅지는 온통 붕대에 쌓여 있고, 팔과 다리는 중환자실 침상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나도 아프지 않고 마음이 한없이 행복했습니다. 여기저기서 환자들의 신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중환자실에서 저는 마음으로, 입술로 하나님께 감사 찬송하였습니다. 3일 후에 일반 병실로 옮겼습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치료를 받으니 빠르게 회복되었습니다.




서른 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은 후 요양병원에서 요양하던 중, 방사선 치료의 후유증으로 열이 38도 이상으로 올라서 다시 암센터에 입원하였습니다. 항생제 치료를 하여 나으면 단순한 염증이고, 낫지 않으면 암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탕자를 외면치 않으시고 따뜻한 품에 안아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긍휼을 생각하며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일주일 만에 열이 내리고 염증이 치료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저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렸습니다. 그 후 5년이 지나고, 완치가 되었습니다. 방사선 치료의 결과로 왼쪽 아래 잇몸이 다 녹고 없어서 생활하기가 조금 불편할 뿐입니다.




이 죄인을 용서해 주시고, 깨닫게 해주시고, 치료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제가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요. 사마리아 여인처럼 세상에서 목마름을 해결하려 했던 이 미련한 자를 구원해 주시고 주님이 주시는 신령한 말씀을 먹고 성령의 생수를 마시며 사는 행복한 자가 되게 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늘 감사하면서,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영광을 살겠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