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금시이작비2019-08-2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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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옳고, 어제는 그르다 함이니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나온 말이다.

 

시인 도연명이 조그만 고을 수령으로 있을 때 얼마 안 되는 봉급에 매여, 상사가 되어 부임하는 고향 후배에게 이관속대를 하고 허리를 굽신거려야 한다는 것이 가소롭기도 해서 그만 사직하고 고향 전원(田園)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구복에 얽매여서 마음이 육신의 종이 되었던 어제까지의 생활방향이 잘 못된 것이었고, 이제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된 오늘의 결정이 실로 잘 된 일임을 깨달았다.

 

이에 “돌아갈거나, 전원이 묵어가니 어이 돌아가지 않으리!”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란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었다. “부귀는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요, 신선이 되는 일은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니, 조석으로 전원을 거닐며 맑은 시내 물가에 다달아 시를 짓고 천명(天命)을 즐길뿐 무엇을 의심하랴” “진실로 나는 길을 잘못 들었으나 그리 멀지 않다. 이제 오늘은 옳고 어제는 그르다는 것을 깨달았노라”(實迷塗其未遠 覺今是而昨非)하고 그는 전원(田園)으로 돌아갔다.

 

성경에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9)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일찍 그 당시 명문이 가마리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자부할 뿐 아니라 기독교 박해에 앞장을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대제사장에게 청하니 이는 만을 기독교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거꾸러지고 회심한 후, 진실로 과거에 옳다 하던 지식이 잘못임을 깨달았다. 이리하여 가치(價値)의 전도(轉倒)가 생기게 된 바울은 금시이작비(今是而昨非)를 높이 외치지 아니 할 수 없었다.

 

우리도 진정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자라면 과거 세상에 영합(迎合)하여 남의 눈치나 살피던 버릇을 고치고, 이 세대를 본 받지 말아야 한다. 교회가 세상의 조류를 본 받고 따라가다가 그 유행이 지나가면 맛 잃은 소금과 같이 되어 밖에 내버려져 사람에게 밟히고 말 것이다. 현대 교회들이 주님의 교훈을 저버리고 세속화되어 가고만 있으니, 결국 주님의 설 자리가 어딘가? 우리 다 각성하여 금시이작비(今是而昨非)를 외칠 때가 된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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