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유만부동2019-09-0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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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상식에서 심히 어긋난 짓을 할 때, 아무리 유만부동이라지만 이럴수가 있냐고 나무란다. 유만부동이란 이 세상에는 수만가지 종류가 있지만은 서로 같은 것은 없고 모두 다르다는 뜻이다.

 

맹자(孟子)에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란 말이 있다. 전쟁터에서 오십보를 달아나다가 선 자가 백보를 달아나다가 선 자를 보고 겁쟁이라고 비웃는다는 것이니 가관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왜? 백보를 달아나나, 오십보를 달아나나 달아나기는 매일반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똑같이 달아나더라도 오십보에서 머물은 것과 백보에서 머물은 것이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다. 예수께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하셨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평안밖에 더 좋은 것이 없다. 그런데 세상이 주는 평안과 예수가 주는 평안은 다르다 한다. 평안이면 다같이 평안이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세상이 주는 평안은 때를 따라 사람에 따라 수만가지다. 집안의 안전에서 오는 평안, 무병장수의 평안, 무사안일의 평안, 부귀영화의 평안 따위로 셀 수 없이 많다. 이런 세상으로부터 오는 평안은 언제 없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불안(不安)의 평안이다.

 

예수께서 주는 평안은 단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는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와의 영적 사귐 안에 있는 자의 그 사랑으로써 받는 평안(롬 8: 31 ~39)이다.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의 어떠한 일도 우리들로부터 빼앗아 갈 수 없는 평안이다. 슬픔이나 고통이나 위기나 박해라도 말살할 수 없는 평안이다.세상이 주는 평안은 외적 환경에도 좌우되는 평안이지만 예수의 평안은 어떠한 외적 환경에도 좌우되지 않는다.

 

“주님, 당신께서 저를 묻어 주시는군요. 이것이 당신의 섭리로 된 일이기에 저는 더할 수 없이 만족합니다” 이는 죤칼빈의 임종의 말이다. “고통이 오는군요. 그러나 저는 평안합니다. 평안해요” 이는 리챠드 백스터의 임종의 말이다.

 

“새가 장차 죽으려할 때 그 우는 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장차 죽으려할 때 그 하는 말이 선하다”(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 善)하였는데 사람이 임종에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에 의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이 평안이야 말로<유만부동>의 평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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