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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덤으로 사는 인생(人生)2017-04-09 16:5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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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몇 날 전 신경통으로 앓은 적이 있었다. 가처가 염려를 해서 약을 지어 왔다. 소화가 안 된다고 망설였더니 기어이 약을 먹어야 속히 낫는다고 권했다. 성가시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오늘날까지 80평생을 살아오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당했다. 만약 하나님이 은혜가 아니었던들 이미 백골이 진토가 되었을 터인데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은 가외로 사는 셈이다. 그러니 아무 것도 아까울 것이 없는 인생인데, 더욱이 평생에 세상에 기여한 일이라고는 한 일이 없으니 내가 생각해 보아도 하잘 것 없는 인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에게만은 소중한 존재가 되었으니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똑같이 가외 인생을 살았음에도 가치 있는 삶을 사신 분이 있다. 어느 날 월남 이상재 선생이 이른 아침에 시외에 있는 교회에 시외에 있는 교회에 설교를 하시기 위하여 걸어가시는데 도중에서 만난 신자가선생님 노년에 수고가 너무 많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였다. 그 당시 선생은76세의 고령이었다. 선생이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이 인생 칠십고래희라 하였는데 70을 넘긴 수명은 가외 것이 아닌가?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생명은 가외의 것인 만큼 아까울 것이 없어!하시며 돌아가시기까지 민족을 위하여 힘스시었다.

 

옛날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연()나라의 태자 단()의 지우(知遇)를 받던 형가(刑家)가 단의 부탁을 받고 진왕(秦王)을 죽이려고 목숨을 걸고 길을 떠났다. 배웅해 주는 친구 고점리(高漸離)와 역수(易水)가에서 이별의 노래를 불렀다. 고점리는 눈물을 지우며 축()을 치고 형가는 노래를 불렀다.

 

바람은 소소하고 역수는 차다

 

그 노래 소리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다 간장을 에이는 듯했다. 사마천(司馬遷)이 말하기를 죽는 것이 때로는 태산보다 무겁지마는 때로는 홍모(鴻毛)보다 가볍다고 하였는데 태자 단의 지우를 갚기 위하여 형가는 목숨을 버리기를 홍모같이 하였다.

 

맹자에 고기는 내가 욕망하는 것이며 고기보다 맛좋은 웅장(熊掌)도 역시 내가 원하는 것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없다면 고기는 포기하고 웅장을 취할 것이다. 사는 것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없다면 사는 것을 버리고 의를 취할 것이다. 사는 것을 역시 내가 원하고 있지만 사는 것보다 의를 취하기를 더 바라고 있기 때문에 구차히 살고자 아니한다.고 하였다. 과연 형가는 목숨보다 의리를 더 소중히 여겼던 것이다.

 

오늘날 온 천하에 의리가 땅에 떨어진 세상에 일의 잘하고 못하고는 제쳐두고 형가와 같은 인물이 부럽다. 세상 사람이야 어찌하든 간에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죄로 죽었던 몸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다시 살리심을 입은 몸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상재 선생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아까울 것 없는 덤으로 얻은 인생을 그리스도 앞에 내어놓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이도록 해야 되지 아니하겠는가? 일개 태자의 지우를 받고도 형가는 역수가(易水歌)를 부르며 사지(死地)로 향하였거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께 중생의 은혜를 받은 우리크리스천이 어찌 아골 골짝 빈들에나 소돔 같은 거리라도 사양할 수 있겠는가? 생각이 이에 미치니 오히려 얼굴이 붉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