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일국에 두 왕은 없다2017-07-02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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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부가 신행길에 그 도의 관찰사의 행차와 마주쳤다.  사또의 하솔이 「비키거라!」 고 벽제(辟除)를 외쳤다. 

 

신부의 가마를 멘 하인들이 황급 피하려 했다.  이 꼴을 본 사또가 대노하여 「웬 여인이 이다지도 방자한고!」 하고 꾸짖었다.  가마 안의 신부가 사또를 향하여 「우리 사또께서는 도내 뭇 백성의 어버이온데, 소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사 길을 양보하여 주소서. 사또께서는 언제라도 행차길을 나설 수 있지마는 소녀의 신행길은 오직 일생에 한 번뿐이옵니다」

하며 간청을 하였다.

 

사또가 이 여인이 너무나 당돌하구나 싶어 소리를 벌컥 지르며 「일도 왕이 지나가는데 이 무슨 해괴한 소린고!」 했다.  신부가 가마문을 열고 사또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천무이일(天無二日)하고, 국무이왕(國憮二王)이온데, 王이란 말이 너무 무엄하오」라고 꾸짖었다.  사또가 「어이쿠!」 실언을 했구나.  큰일 났다 당황해서 당장 자기가 타고 있던 쌍가마를 내려 땅에 서서 신부에게 용서를 빌고 자기 쌍가마로 신부를 모셔가게 했다.  이 여인이 바로 후일 북병사를 낳은 분이라 한다.

 

우리가 믿지 아니할 때는 내 속에 「나」라는 왕이 좌정하고 있다가 마귀의 사주를 받아 정욕을 좇아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 속에 예수를 왕으로 모셔들이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믿자마자 내 속에 왕이 둘이 있게 된다

 

예수를 따르자니, 옛왕이 못마땅해 하고, 옛왕을 따르자니 예수가 못마땅해 함으로 이래도 저래도 처신하기가 어려워진다. 「나」라는 한 왕국에 두 왕이 통치권을 행사하게 되니 사사 건건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예수를 제대로 믿기로 결심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고 절규할 수밖에 없다.

 

옛왕이 지배하는 육신의 생각은 나를 사망으로 이끌어가고, 예수께서 지배하는 성령의 생각은 나를 생명과 평안으로 이끌어간다. 여기에 육신대로 살 것인가 영을 좇아살 것인가 갈등과 고민이 그치지 아니하는 것이 신자의 마음의 실상이다.  그렇다면 종당 마음에 갈등은 없이할 수 없단 말인가? 아니다.  성령이 우리를 도우시나니 〈나〉라는 왕의 세력은 나날이 꺾어 버리고, 예수께서 온전히 내 안에서 홀로 군림하실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다.

 

결국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고 홀로 왕노릇하실 때, 우리는 참된 크리스천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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