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존귀한 인생2017-12-3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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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문호 투르게네프가 사랑하는 딸 소니아를 잃고 비탄에 빠져 있을 때 친구가 위로 차 와서 또 딸을 낳으면 될 게 아닌가 너무 슬퍼 말게.”하였더니 아무리 딸을 다시 낳는다 해도 우리 소니아와는 바꿀 수 없네.”하여 울었다고 한다.

 

우리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잊을 수 도 없고 다른 이로 바꿀 수도 없다. 아무리 잊는다 해도 잊혀지지 않는 귀중한 존재이기에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하고 못내 서러워 할 수 밖에 없다.

 

어느 시골 장터에서 본 일이다. 나병 환자인 어머니를 잃어버리고 몸부림치며 우는 아이가 있었다. 여러 사람이 아무리 달래어도 듣지 않고 울고만 있다가 그 어머니가 나타나자 울음을 뚝 그치고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비록 나병으로 코가 문드러졌어도 그 아이에게는 그녀 이상으로 더 좋은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석가가 태어날 때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외쳤다 한다. 하늘 위에서나 하늘 아래서나 내가 홀로 존귀하다는 말이다. 40억 인류 중에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나를 나 되게 하기 위하여 이 땅에 보내셨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모두 둘도 없는 존귀한 자이다.

 

요즘 인명 경시의 풍조가 있는데 하나님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했다. 잘난 사람만 귀하고, 못난 사람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양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미국의 한 비행기 제작회사에서 비행기를 조립하고 외면에 못을 박는 공원을 모집하였다. 응모자 중에는 상당히 아이큐가 높은 사람도 있었는데 다 제쳐놓고 아이큐 70이하 되는 사람만 뽑았다 한다.

 

어떤 사람이 왜 그렇게 하였느냐고 물으니 날이면 날마다 못만 박는 일을 아이큐가 높은 사람은 계속하지 못하고, 아이큐가 낮은 사람은 불평 없이 성실히 그 일을 계속하기 때문에 우수한 숙련공이 된다고 하였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은 아이큐가 낮은 사람도 쓸모가 있어서 낳게 하신 것이 아닌가?

 

인간은 존비(尊卑), 귀천(貴賤), 현우(賢愚)를 막론하고 생명의 존엄성에는 차별이 없다. 옛 글에 삼군의 장수를 빼앗을 수는 있으나 한 사나이로부터 그의 뜻을 빼앗을 수는 없다 (三軍可奪師匹夫不可奪志也).”고 하였다. 초야에 묻힌 보 잘 것 없는 필부라도 억지로 그 뜻을 굽힐 수는 없다. 그만큼 인간은 독자적 가치관을 가진 주관적인 귀한 존재이다.

 

내 고향은 자수정(紫水晶)의 명산지다. 내가 어릴 때는 광산 곁에 가면 수정이 되다가 만 뾰족뾰족하게 산 모양으로 얽혀 붙은 돌들이 많이 굴러다녔다. 조종 주워서 가지고 놀다가 그대로 버리곤 했다. 그러나 근래 수석(壽石)붐이 일어나고 이런 돌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지니 이제까지 버려 둔 돌이 크게 값이 나가게 되고 귀한 것이 되었다. 이와 같이 만물은 다 사랑을 받을 때 귀중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 세상 중에서 누구 한 사람이라도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이가 있다면 살 가치가 있다 하겠다.

 

생각이 이에 미치니 세상에서 예수 믿고 거듭난 성도야 말로 진실로 천사도 흠모할 만한 귀중한 인간임을 알 만하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시편 139:14~17)하며 다윗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으로 인간이 지음 받은 것을 찬양하였고,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 49:15)고 한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 개개인을 간절히 사랑하고 있는가를 보여 주고 있지 않는가?

 

사람이 못나면 몸에 붙은 혹같이 없는 것이 좋고, 있으면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는 천하보다 귀한 하나님의 자녀이다. 부모가 못난 자식을 더 귀해 하듯 하나님도 우리가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신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하지 아니하였는가?그러나 세상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려 하지 않고 자기의 존귀함도 버리고 되는 대로 살려 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자기 스스로를 해치는 자이다.

나는 예수 믿고 구원받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람이 있다. 이 또한 자기 스스로를 버리는 자이다. 맹자도 스스로 해치는 자는 함께 이야기할 바가 못 되며 스스로 버리는 사람과는 함께 일을 할 바가 못 된다(孟子曰自爆者不可與爲言也自棄者不可與有爲也).”했다. 이런 사람들이야 어찌하랴?

 

다만 우리 크리스천들은 나 하나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존재가 아니요, 존귀하기가 이를 데 없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명심하고 자중자애(自重自愛)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값지게 살아가야 한다.

 

내가 언젠가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갔는데 현악기를 켜는 분이나 관악기를 취주하는 분들은 다 열심히 연주를 하는데 오직 큰북 치는 사람만이 구경하듯 오랫동안 가만히 서 있다가 놀란 듯이 한번 치고는 또 그냥 서 있었다. 옆에 동석했던 음악가에게 저 북 치는 분은 있으나마나 하지 않는가?”하고 물었더니 그래도 그 북을 악보에 맞춰 제 때에 쳐야 연주가 제대로 된다 하였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다 하나님이 베푸는 대 연주회에 한몫씩 맡은 연주자이다. 우리가 바이올린을 켜든 피를 불든 북을 치든 다 제 소임을 다할 뿐이다. 이럴 때 참 인생으로 태어난 보람이 있고 가치가 있다 하겠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로마서 8:1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