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성경을 통해 본 부부 관계의 고찰(考察)2018-02-0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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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 싱싱한 복숭아나무여

꽃이 활짝 피었네

시집가는 이 색시

그 집안을 화락케 하라

(桃之夭夭 灼灼其華 之子于歸 宜其室家)

 

이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결혼 축하시의 일절이다. 하나님은 남자가 부모의 품을 떠나 아내를 맞이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라(창세기 2:24) 하신다. 결혼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이다.

 

옛글에 남녀 두 성이 합하는 것은 인간을 낳는 시작이요, 만복의 근원이다(二姓之合 生民之始 萬福之源).”라고 하였다. 그런데 남녀 두 사람이 결혼함으로 그대로 한 몸 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한 요구인 것 같다. ‘1+1=1’이 란 것이 있을 수 없다. 결국 남자도 반, 여자도 반씩 줄여 ‘0.5+0.5=1’로 하나가 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는가? 결혼생활이란 내가 죽어지며 지고 들어가는 생활을 하여야 된다는 말이다. 나를 온전히 내세우고 남녀가 서로 대립(對立)하는 것은 결혼생활을 망치게 하는 마귀의 수작이다. 부부(夫婦)란 일체(一體), 남녀 두 사람은 함수(函數)관계에 놓인 자이다. 옛날에는 여자가 시집가서 3년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 벙어리, 최소한 9년을 바보가 되어야 시집살이를 잘할 수 있었다 한다. 이를 수식(數式)으로 표현하자면 ‘1+0=1’이 되라는 말이다. 아내가 똑똑해서 내주장(內主張)을 하게 되면 남편은 0.3, 아내는 0.7쯤 되어야 ‘0.3+0.7=1’이 될 것이다. 이 둘이 다 정상적인 부부관계라 할 수 없다.

 

성경에는 무엇이라고 했는가?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에베소서 5:22~23)하고,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에베소서 5:25)하였다.

 

심리학적 견지에서 보면 남자는 논리적이요, 합리적이요, 행동적이요, 능동적이요, 지배적이면서 존경 받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여자는 감정적이요, 의존적이요, 수동적이요, 복종적이면서 사랑 받기를 좋아한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구조를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아내는 남편을 가장(家長), 즉 머리로 삼아 복종하고 경외하라 하였다. 아내가 남편의 지도력을 바라는 것은 여성이라는 표시이다. 결혼활동은 평등과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서로의 존재를 지킬 수 있는 기회가 똑같이 주어여야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에도 그 우두머리가 있듯 결혼생활에도 당연히 남자가 머리가 되어야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남편이 아내에게 무원칙적으로 복종을 요구해서는 아니 된다.

 

성경은 분명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하였으나 이는 주께서 교회를 죽기까지 사랑함과 같이 남편이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고 또한 남편의 위치를 바로 지킬 때의 말이다. 그렇지 못한 남편에게 누가 복종하겠는가? 하여튼간에 아내는 남편에게 짜증스러운 얼굴을 보이지 말고 항상 상냥하고 명랑한 태도로 신뢰와 존경과 칭찬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함으로 남편을 기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은 가정에서 가장으로서 지도력을 발휘할 뿐 아니라 아내를 내 몸같이 사랑하여야만 된다. 베드로전서 37절에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하였다.

 

남편은 아내와 동거해야 한다. 부부가 된 이상에 남편은 이유 없이 외박을 해서는 안 된다. “함께 기도하는 가족은 함께 머문다.”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을 함께 하는 부부는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 “살 때는 한집 밑에서 살고, 죽어서는 한 구덩이에 장사 지낸다(生則同住 死則同穴).는 말과 같이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게 부부의 태도이다. 특히 남편은 아내가 자기에게 소중한 존재임을 인정해 주고 아내의 심정을 이해하며 모든 것을 숨김 없이 상의하고 아내의 고충을 들어 주는 아량이 있어야 된다.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하였으니 모든 생활에 아내가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말이 아닌가. 아내는 남편의 애정 속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남편이 가정에서 폭군이 되어 아내의 사랑만을 요구한다면 그 가정에는 진정한 행복이 있을 수 없다.

 

성경은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아내들이여 네 남편을 사랑하라는 말이 한 마디도 없다. ? 아내는 우물의 펌프와 같다. 먼저 남편이 사랑의 물을 부어 넣어 주어야 아내의 깊은 우물 속에서 존경과 신뢰의 단물이 솟아오를 것이다. 남편들이여, 아내를 먼저 사랑하라! 그리고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을 무조건 존경하라! 이것만이 그대를 행복케 할 것이다. 자기 남편을 무조건 존경하라! 이것만이 그대들을 행복케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정신적 빈곤을 초래하여 기도 생활이나 교회 봉사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근간 핵가족주의가 유행하여 부모 자식 간에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 추세를 막을 길이 없고, 또 성경도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세기 2:24)하였다. 이로 보건대 남자가 결혼하기 위하여는 먼저 부모를 떠나야 된다. 사랑에는 필요의 사랑선물의 사랑두 종류가 있다고 C.S. 루이스가 말했다. ‘선물의 사랑은 모성애(母性愛)와 같은 것인데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성장하기까지의 사랑을 말한다.

 

소나 개나 닭은 새끼가 성장하여 독립할 때까지만 사랑하고 돌봐줄 뿐이다. 그런데 사람만은 성장한 자녀에 대하여 지나친 소유욕, 독점욕, 사랑의 반응, 기대, 감사에 대한 집착등으로 오히려 자식을 괴롭히는 일이 왕왕 있다.

 

사실 어머니의 숨막히는 사랑은 자식에게 속박이요, 질곡이 된다. 부모는 성장한 자식을 놓아 줄 줄도 알아야 한다. 타고르는 나의 사랑으로 하여금 너를 둘러싼 햇빛같이 빛나는 자유를 주게 해다오!”라고 읊었다.

 

결혼한 남자가 어머니의 치마꼬리를 붙잡고 매달리는 것은 정신적 지진아(遲進兒)의 소행이요, 부부 화합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비록 부모를 한 집에 모시게 되더라도 남편은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의 위치를 지키고 두 부부가 합의해서 부모에게 효성할 것이요, 부모도 또한 아들 내외의 사랑에 금이 가지 아니하도록 간섭지 말아야 한다. 이러할 때 진정한 화목이 이루어질 것이다.

 

오늘날 이혼 원인의 대다수가 남편들의 외도와 고부지간의 불화에 기인하고 하고 있으니 부부 화목의 책임은 거의가 남편에게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체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성장 과정도 다른 두 남녀가 한 부부로서 일생을 같이 살기 위하여는 서로 사랑하지 않고는 될 수 없고,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어야 한다(고린도전서 13:7)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잠언 10:12)

결국 부부란 미우나 고우나 참고 견디며 서로 붙들어 주고 동지적 결속으로 험한 인생길을 함께 살아가는 운명 공동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