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중구난방(衆口難防)2018-03-1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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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날 믿지 아니할 때 경험했던 일들을 꿈꾼 적이 있다. 꿈 속에서 발 가는 대로 걷다보니 정오가 지나서야 어떤 시골 마을에 당도하였다. 장꾼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야단이다. 신축 가옥의 지붕 위에 흙을 덮을 양으로 온 동리 사람들이 부역하러 나온 모양이다. 지붕 위에는 몇 사람이 앉아서 진흙을 받아 깔고, 밑에서는 수십 명이 진흙을 뭉쳐서 지붕 위로 던져 올리느라 법석이다. 하도 소란하기에 가보니 공사에 대하여 이래라 저래라 각자 한 마디씩 지껄인다.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이 누구의 장단에 춤을 출지 분간을 못 할 지경이었다. 자기 말대로 안 한다고 노기등등(노하거나 성난 기운이 얼굴에 가득하다 )하여 고래고래 고함까지 지르는 자가 있는가 하면 혹은 의견이 엇갈리어 서로 삿대질을 하며 싸움질까지 한다. 이러고서야 일이 제대로 될 리가 만무하다. 내가 보기에는 다 목수요, 미장이요, 공사에 무식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양 싶다. 어느 누구의 말도 일리(一理)가 없지 않으니 말이다.

 

속담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더니 오늘 이 집 일이 그 꼴이다. 한심한 노릇이다. 왜 이 사람들이 각자 제 마음대로 지껄여서 일을 망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안 나서면 안된다’는 소영웅 심리가 누구에게나 있는가 보다. 급기야 젊은 주인이 나서서 말했다. “부역 오신 여러분, 누구라도 잠자코 있는 것이 나에게는 큰 부조입니다.” 젊은 주인은 중구난방에 진땀을 빼고 있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참여의식(參與意識)이 있어 공중(公衆)의 일에 한 마디씩 해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다 부질없는 일이다.

 

명심보감에 “비록 지극히 얼빠진 사람이라도 남을 책망 할 때는 총명한 것 같다.”고 했으니 공연히 아는 체하고 날뛰는 것은 자기의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성경은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야고보서 3:1~2)하였다.

 

구경을 하다보니 ‘지나가는 중 사내공사(寺內公事)하는 격’으로 나도 입에서 한 마디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에라, 가자!’ 하고 발길을 이웃 마을로 옮겼다. 거기에는 마침 상가에서 발인제가 있었다. 굴건제복을 한 상주가 아직 어리다. 저 어린 나이에 친상을 당했으니 애처롭기만 하다. 제사를 마치고 운구를 하는데도 여기서도 시비가 벌어졌다. 관 머리쪽이 앞서야 되느니 발쪽이 앞서야 되느니 논란이 자자하다. 그러니 이래라, 저래라 하는 바람에 운상을 할 수 없게 되고 상주는 울상이다. 죽은 시체를 두고 머리가 앞에 가야 된다. 발이 앞에 가야 된다 시비니 무슨 꼬락서닌가?

 

인간성의 고질인 자기 과시벽(自己誇示癖)이 어디서나 나타나는 데 나는 심한 혐오감을 느꼈다. 왜들 다 이럴까, 공자(孔子)도 “그 위치에 있지 아니하면 그 위치에 속한 일을 모의하지 말라(子曰 不在其位 不謀其政).”고 했다. 아무리 어리더라도 상주의 소원대로 버려 두면 될 것 아닌가. 거기에 무슨 생색을 내자고 핏대를 올리느냐 말이다. 이럴 때 가만 보고만 있는 사람이 제일 현명한 사람이리라. 꿈에서 깨어나서 곰곰이 회상해 보니 내가 6년 동안 어떤 여 전도사님과 한 팀이 되어 교구를 돌보던 일이 생각 났다.

 

나는 무던히도 고집스러웠는데 6년을 하루같이 보람 있게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가 그 분의 덕이다. 구역예배 설교는 거의 내가 담당했는데 언제라도 전도사님은 성도들 보다도 더 열심히 내 설교를 들어 주시고 예배 후에는 “장로님, 참 은혜 많았습니다. “하며 항상 격려해 주시는 것이었다. 때로는 내가 생각해도 죽을 쑤었다 싶은 설교도 잘 했다고 우긴다. 낯 간지러울 때가 있어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더욱이 음대 출신인 그 분이 한 번도 자기가 원하는 찬송가를 고집하지 않았다. 그리고 구역 부흥도 구역장들의 공로로 돌리고 자기는 항상 무능하다고 미안해 했다. 이제 딴 교구로 갈리었는데도 전임지 성도들이 그 전도사님을 그렇게도 사모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남이 하는 일에 가만히 보고만 있지 못하고 왈가왈부하는 것을 충정(忠情)의 발로인 양 생각한다면 내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요, 내 속에 교만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경솔히 남의 일에 비평하지 않고 자기 의견을 고집하지 않는 사람은 크게 지혜로운 사람이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린도후서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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