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가외 일2018-04-1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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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시골 농가에 머슴 사는 외로운 청년이 있었다. 하루는 주인의 심부름으로 이웃 동리 부자댁에 갔다. 용무를 마치고 돌아오려는데 요기를 하고 가라고 붙드는 바람에 식사가 나오기까지 한참 동안 기다리게 되었다.

 

쳥년이 쉬는 동안 뜰을 내다보니 청소를 하다가 버려둔 빗자루가 그대로 있고 뜰은 어질러진 채였다,. 청년은 벌떡 일어나 빗자루를 들고 뜰을 깨끗이 쓸어 놓았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방에 들어와서 식사 대접을 받았다. 부잣집 영감은 이 광경을 보고 마음에 크게 감동을 받게 되엇다. ‘저 사람은 심부름을 잘 했으면 그만이지 잠시 쉬는 동안 남의 집 뜰까지 쓸어 주고 갈 것이 무언가? 참 기특한 사람이로군!’

 

이듬해 이 부잣집 영감은 자진해서 그 청년을 자기 집 머슴으로 맞이하였다. 청년은 항상 주인이 시키는 것 이상으로 머리를 써서 일을 하였다. 이러므로 주인 영감의 신임이 두터워지고 급기야는 주인 영감이 청년을 양아들로 삼고 돌봐주게 되어 후일에 크게 성공하여 잘 살게 되었다. 불과 5분 정도의 가외(加外)수고가 이 청년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셈이다.

 

성경에도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마태복음 5:41)라는 말씀이 있다.

 

어느 날 내가 심방을 가다가 집을 찾지 못해서 지게꾼에게 길을 물었다. 퉁명스럽게 “저리 가 보시오.”라고 말하며 귀찮아하는 표정을 보니 더 묻기가 어려워 망설이다가 지나가는 소녀에게 다시 물었다. 소녀가 생긋 웃으며 “할아버지, 저도 거기로 갑니다. 저와 같이 가시지요.”하고 그 집 가까이까지 따라오며 상세히 잘 가르쳐 주어 무난히 찾아갈 수 있었다. 별것은 아니지만 두고두고 그 소녀가 잊혀지지 않고 고마운 생각이 든다.

 

사람의 감정은 참 미묘한 것이다. 전화 수화기를 들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교환양의 “네”하고 상냥한 음성이 들려올 때는 어쩐지 맘이 흐믓하고 “예!”하고 둔탁한 사무적 음성이 들려오면 무언가 모르게 우울해진다. 음성의 억양에도 사무적인 것 이상으로 무언가 서비스를 기다리는 것이 인간인가 보다.

 

각박한 인생을 살아가려면 때때로 지치고 피곤할 때가 있지 아니하겠는가? 여기에 청량제는 특별한 봉사보다도 서로 대할 때 생긋 미소 짓고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하는 가외의 작은 노력이 얼마나 우리를 즐겁게 하는지 알 수 없다.

 

옛말에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따뜻하기가 솜 같고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날카롭기가 가시 같다(利人之言煖如線 傷人之言利如荊棘).”하였다. 우리가 다 서로 가외의 따뜻한 말을 주고받고 하여 가시 돋힌 세상을 솜같이 포근하게 만들지 않겠는가?

 

크리스천은 당연히 할 일은 할 것이로되 가외로 더 좋은 일을 하여야겠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겠는가?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복음 5:4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