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호랑이와 머슴2019-01-13 1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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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거의 멸종하다시피 한 한국 호랑이가 옛날에는 우리 나라에 많이 서식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해방 후 이승만 박사가 일본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초청으로 일본 동경에 간 일이 있었는데, 그 당시 일본 수상 요시다씨가 이박사를 예방하고 수인사 끝에 “한국에 아직도 호랑이가 많이 있습니까?”하고 뚱딴지 같은 질문을 했다. 이 박사가 대답하기를 “임진왜란 때 침략자 가등청정이 다 잡아가고 이제는 한 마리도 없소.”하여, 남의 나라 침략하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을 비꼬아 정문의 일침을 놓았다 한다. 사실 임진왜란 당시만 해도 우리 나라에는 호랑이가 자주 인가에 내려올 정도로 흔했다.

 

그 당시 어느 산골에 사는 처녀가 해가 저문 뒤뜰에서 머리를 감고 있었다. 옛 속담에 “밤에 머리를 감으면 호식한다.”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큰 호랑이가 울을 넘어와 처녀를 물고 산으로 도망쳤다.

 

동리 사람들이 징을 울리며 따라갔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산중 깊숙이 들어간 호랑이는 큰 나무 밑에 처녀를 내려놓고, 고양이가 쥐를 놀리듯 처녀의 뺨을 요리 치고 조리 치니, 혼이 난 처녀가 이리 넘어지고 저리 자빠져 기진맥진하였다.

 

이때 그 나무 위에는 뜻밖에도 동리 머슴이 올라가 있다가 이 광경을 보았다. 그는 그날 아침 지붕에 덮을 새를 베기 위하여 깊은 산중까지 왔다가, 날이 저물자 짐승을 피하여 나무 위에 올라가 졸고 있던 중이었다. 이 머슴은 자기 목전에서 동리 처녀가 호식 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나무를 타고 내려온 그는 목숨을 내걸고 낫을 휘두르며 호랑이에게 덤벼들었다.

 

호랑이도 으르렁거리며 머슴에게 달려들었다. 이리하여 머슴과 호랑이는 함께 어울려 밤이 지나도록 싸우는데 과연 용호상박(龍虎相搏)의 혈투(血鬪)였다. 그러다 날이 샐 무렵 호랑이는 머슴의 낫에 찔려 죽고 머슴도 전신을 호랑이에게 할퀴고 물려 유혈이 낭자한 채 기절하여 쓰러지고 말았다.

 

날이 밝자 산으로 올라온 동리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놀라 머슴과 처녀를 업고 동리로 내려왔다. 머슴은 곧 깨어났으나 오랫동안 앓아 누웠다. 처녀가 지성으로 간호해주어 상처는 완쾌되었으나 머슴의 얼굴에는 호랑이가 할퀸 발톱자국이 밭고랑같이 패여 차마 볼 수 없는 흉터가 생겼다.

 

그 얼굴로는 장가를 못 가게 될 머슴에게 처녀가 시집가기로 결심했다. 이 뜻을 아버지에게 밝혔더니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은혜는 은혜이고 결혼은 결혼이지, 머슴은 빈천한 출신일 뿐 아니라 그 위에 얼굴도 못 쓰게 되었으니 그에게 너를 시집 보낼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

 

처녀로서는 이미 죽은 목숨, 이제 살아 있다는 것은 순전히 머슴으로 말미암아 얻어진 가외의 목숨일 뿐, 더욱 범에게 할퀸 흉터가 오히려 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처녀는 아버지에게 떼를 써서 결국 그 머슴과 결혼하였고 일생을 단란하게 잘 살아 재생의 은혜에 보답했다.

 

“크신 은혜 복된 말씀 죽은 나 살렸네”라는 찬송가를 지은 존 뉴톤은 7세 때 어머니를 잃고, 그 후 방탕과 부도덕과 악의가 가득 찼던 소년 시절을 보내고 드디어 노예상선의 선장으로 비인도적 죄악을 자행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애인 메리 카틀러의 기도로 말미암아 회심하고, 토마스 아 켐피스의 저서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아 변화되었다.

 

그가 말하기를 “내가 젊었을 때는 확실한 것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확실한 것이란 단 두 가지뿐인데 하나는 나는 비참한 죄인이라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는 전적으로 만족한 구세주시라는 것이다.”라고 했다.

 

진심으로 자기를 반성해 본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나 자기 자신이 죄 아래 팔려 있다는 것을 절감할 것이다. 성경에 “죄의 값은 사망이라”하였으니 우리들은 이미 하나님에게 사형선고를 받은 몸이나 다를 바 없다. 오직 예수의 십자가만이 우리의 살 길이다. 황량한 골고다 언덕에 우뚝 선 저 십자가는 예수께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흔적이 아닌가!

 

호환(虎患)에서 살아난 필부(匹婦)일지라도 재생의 은혜를 잊지 아니하였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 예수의 피로 살아난 우리일까 보냐! 우리 모두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