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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마음의 추2017-08-27 13:5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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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이리저리 헤아려 보는 것을 「마음을 저울질 해본다」고 한다.  저울판에 내 마음을 얹어 놓고 평안의 추로 달아 보아 마음 속에 있는 불안, 공포의 무게가 저울추의 평안과 평형을 이룬다면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함과 같이 마음속에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자랑으로 가득 차 있기에 항상 마음을 실은 저울판 쪽으로 기울어지기가 예사이다.  사람의 마음은 외곬으로 달리기 마련이다.  성경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8:5,6)고 하였는데, 육신의 부패한 마음을 실은 저울판이 일단 기울어지기 시작하면 평안의 추는 그냥 버틸 수가 없어 안으로 밀려들고 부패한 육신의 생각으로 치닫고 만다.  이러므로 다시는 저울대의 평형을 잡기가 곤란하게 된다.   우리가 마음 속의 죄의 무게를 덜기 위하여 가지가지 죄악된 생각을 제해 버리려고 애도쓰고, 수양도 하려고 힘써 본다.  이로하여 금욕주의(禁慾主義)에 몰두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금하면 금할수록 더 하고 싶어지는 것이 피치 못할 인생의 약점이다.  이러므로 생각을 안하자니 생각이 절로 나고, 잊어버리자니 잊을 수가 없다」(不思而自思 )한 옛사람의 말이 마음의 실상을 잘 표현하였다고 하겠다.

 

죄된 마음을 실은 저울판은 점점 가중되고, 평안의 추는 더욱더 가벼워지니 금욕주의로 마음의 평형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워진다.  그런고로 사도 바울 같은 이도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하였다.

 

옛날 어떤 수도인이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으니, 그 앞에 스승이 와서 기와조각을 열심히 갈고 있었다.  수도인이 이상하게 생각해서 기와조각을 갈아서 무엇을 만들려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을 만들려 한다 하였다.  수도인이 기와조각을 아무리 갈아 보아야 거울이 될 일이 만무하지 않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스승이 하는 말이 「아무리 기와장을 갈아도 거울이 안되듯 사람은 아무리 금욕하고 수양한다고 성가자 아니 된다」했다 한다.  우리가 종종 보거니와 산기도를 많이하고 은혜받았다 자랑하고 내려온 사람 가운데 더욱 각박하고, 교회에 말썽을 일으키는 분들이 허다하게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직 평안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행주 좌와(行住坐臥)로 앉으나 누우나 내 「마음의 주」로 모셔 앉힐 때만이 죄짐은 극복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고 성경은 단정하고 있다.  온전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 나를 맡기고 사는 길 외에는 도무지 구제받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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