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꼬꼬마2017-09-1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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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마란 실 끝에 새털이나, 종이 오리를 매어 바람에 날리는 아이들의 장난감의 하나이다. 우리 속담에 종의 자식을 귀애하니까 생원님 상투에 꼬꼬마를 단다는 말이 있다. 종의 자식을 긍휼히 느껴 귀애하니까 그 사랑에 젖어, 버릇없이 상전의 상투에 장난 삼아 꼬꼬마를 달아 주인이요, 상전인 생원님의 체면을 모독한다는 풍자다. 오늘날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이 예수만 믿으면 무조건 구원받는다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방종의 구실로 삼고, 부덕(不德)한 일을 예사로 하여 불신자들의 조소를 사는 일들이 허다한데, 이는 하나님의 영광에 꼬꼬마를 다는 꼴이 아니 될까 두렵다.

 

교회에서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강조하다 보니 오늘날과 같은 지극히 부패한 사회에서 사는 우리가 부득이한 약간의 죄쯤은 지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다. 이런 탓인지, 우리 한국 기독교도들이 죄를 안이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불신자들로부터 예수 믿기 전에 복장부터 고쳐라는 비난을 받는 일이 왕왕 있다.

 

사실 교계의 지도적 인물 중에도 거짓말을 예사로하고, 지킬 생각도 없는 맹세를 스스럼없이 하는 것을 볼 때 분외의 말을 하는 것도 미련한 자에게 합당치 아니하거든 하물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 존귀한 자에게 합당하겠느냐(17:7)고 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힐까 송구스럽다. 종의 자식은 철이 없어서 상전의 상투에 꼬꼬마를 달았지마는 사회의 지도적 인물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아무리 목사요, 장로라 하더라도 오늘날 같은 세상에 살자면, 어찌할 수 없이 고의 아닌 죄를 범할수 있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종한 생활의 구실로 삼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우리가 성서의 진리를 회피하거나, 불가능하다 해서 체념해 버려서야 어찌 크리스천이라 하겠는가?

 

나는 율법주의자나 도덕 군자가 되려 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자유는 세상적 유혹이나 관습에 의한 욕망을 억제하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고, 크리스천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가 크리스천 안에 거하기 때문에 악한 욕망은 죽고, 거룩한 욕망이 솟아나오는 데서 오는 것이라 알고 있다. 소위 교회 지도자가 그리스도 안에서와 세상 안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편리하게 처신하여 살려면 차라리 그만 두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떳떳하지 아니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