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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죽어야만 했던가2017-02-12 17: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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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 진주 남강 의암에 서서 쪽빛 같은 푸른 강물을 굽어보며 왜장의 목을 끌어안고 남강에 빠져 죽은 논개를 생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고 있었다. 최후까지 시산혈해(屍山血海)를 이루고 항전하던 의병대장 김천일, 경상우병사 최경희, 충청병사 황진 등이 모조리 전사하고 난공불락을 자랑하던 진주성도 왜병에 짓밟힌 바 되었다.

성 안에서는 포악한 왜병들의 살육 강탈이 자행되면 승전을 알리는 함성은 천지를 진동하였다. 살아남아 포로가 되어 전승에 도취된 왜장의 주연석에 끌려나온 논개, 젊고 아리따운 자태는 차라리 요염하다고나 할까? 한눈에 반한 왜장은 기어코 술을 따라 올리라 한다. 논개는 굴욕을 참고 왜장에게 술잔을 바치고 있었지만 내심은 왜장의 간이라도 내어 씹고 싶은 분노를 참느라고 부르르 떨고 있었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나라 원수를 미워하는 마음에 치가 떨리고 전사한 님을 따라 죽지 못한 여한에 연약한 여성이지마는 이제는 죽음도 두렵지 않다. 일배 일배 부일배로 왜장을 취하게 한 후 춤을 추자고 왜장을 일으켜 세워 끌어안고 강물에 뛰어들어 함께 죽고 말았다. 참으로 비정한 최후다. 그러나 논개는 끓어오르는 적개심으로 「나 죽고 너 죽」』는 각오가 되어 있기에 오히려 전신에 극렬한 희열을 느꼈으리라.

이 소식을 전해들은 만 백성은 비분강개를 못 이겨 춤을 추고 논개의 충절을 찬양하지 아니한 자 누가 있었겠는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나라 원수 이등박문을 격살한 소식을 듣고서 시인 김찬강 선생이 이렇게 시를 읊었다.

평안도 장사가 두 눈을 부릅뜨고

통쾌하게 나라 원수 죽이기를

염소 죽이듯 하였구나!

내가 아직 죽기 전에

이 좋은 소식을 들었도다.

국화 옆에서 미친 듯 노래하고

정신없이 춤추노라

(平安壯士目雙張 快殺邦讎似殺羊 未死得聞消息好 狂歌亂舞菊花傍)

과연 내 나라 내 민족을 사랑할수록 원수에 대한 적개심은 불타는 법이다. 옛글에 한 하늘을 이고 같이 갈 수 없는 원수(不俱載天之讐)이기에 너와 나와 함께 망하리라는 말이 있다. 원수와 공존할 수 없는 바에야 원수와 함께 죽고자 아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니겠는가? 논개나 안중근 의사는 다같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했기에 나라 원수와 함께 살 수 없이 목숨을 홍모(鴻毛)와 같이 나라를 위하여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몽은 비록 죽었어도 그 호국 정신은 민족과 더불어 영원하리라. 생각이 이에 미치매 문즉 나는 십자가를 쳐다보았다.

 

최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시고 질병은 미워하되 병자는 사랑하시고 가난은 미워하되 가난한 자는 사랑하시고 환난은 미워하되 환난당한 자는 사랑하신 예수님이 죄와 질병과 가난과 환난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온 인류를 지극히 사랑하신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원수인 죄와 질병과 가난과는 「불구대천지수(不俱戴天之讎)」가 되어 원수와 더불어 십자가에서 함께 죽고자 함은 원수의 속박에서 인류를 해방시키고자 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근자 혹이 「초림 예수는 약해서 십자가에 달리어 죽음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온 인류 구원은 실패하고 말았다」한다니 그렇다면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멸망하고 말았단 말인가? 이야말로 우리의 주님을 모독함이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다. 이는 예수님이 그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기미(幾微)를 깨닫지 못한 연고이다. 이 사실을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4,5)

보라! 논개와 같은 연약한 일개 여성일지라도 나라 사랑하는 충성심으로 말미암아 적장을 안고 죽을 수 있었거늘 하물며 온 인류를 지극히 사랑하신 하나님의 아들이겠는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어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5)하신 그 사랑이 강권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자진해서 십자가에 올라가신 것이다.

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지를 아니했다면 기독교는 한낱 윤리적 교훈에 불과한 것이요 거기에는 구원도 생명도 없을 것이다. 남강 물이 말라버린다 하더라도 논개의 충혼은 영원히 우리 겨레의 꽃으로 추앙을 받을 것이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는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영원히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