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지금은 깨어서 기도할 때다2017-09-10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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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영덕에서 안동을 향하다가 도중 청송(靑松)에 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길이 포장이 되지 아니하여 그만 지나치고만 일이 있었다. 내가 어릴 때 들은 이야기인데, 옛날 청송에 살던 한 농부가 아내가 짠 왕다새 미영베(무영베) 한 필을 장에 팔러 나왔는데, 그 베가 어찌나 험한지 도무지 하자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한다. 그 때, 서울 어느 정승이 민정 시찰자 미복으로 청송장에 들렀다가 이 왕다새 미영베를 보고 생각하기를 우리 백성들은 이런 험한 베로 옷을 지어입고 사는데, 서울 장안 귀공자들은 비단옷도 지천이니, 한심한 노릇이다 하고 옛 싯귀를 떠울렸다.

 

어제 성중에 들어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옷깃을 흠뻑 적셨다. 성중에 온통 비단옷 입은 사람들은 양잠하던 사람들이 아니더네!감회에 어린 정승은 그 농부가 달라는 이상으로 후히 댓가를 주고, 자녀들에게 보일 양으로 그 베를 사갔다. 농부가 하도 고마워서 그 정승의 집을 수소문하여, 산에서 다래 한 부대를 따 짊어지고 사례 인사차 그 댁을 찾아 가져갔다. 그 정승에 그 백성이라 할까? 주인 정승이 청산별곡에 있는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랐다.는 시는 읽었어도 실물은 처음 보는 것이라, 몇 개 먹어보았더니 맛이 그럴 듯했다. 임금님이 생각나서 이를 진상하였더니, 임금님이 그 순박한 농부의 정성을 알고 무슨 직책을 하사하려 했다. 그 농부가 고을 원님도 아니요, 하다못해 면장도 아닌 봇도감(洑都監)을 시켜달라 청했다. 임금님이 껄껄 웃으시며 과연 제 분수를 아는 백성이 로고!하시며, 어인이 찍힌 봇도감 임명장을 하사하시었다는 일화를 들었기 때문에 청송에 가보고 싶어했던 것이다.

오늘날 물질의 풍요는 그 당시의 몇천 배가 되는데, 인심이 각박하기로는 비길 데가 없다. 왜 그럴까? 나는 부끄러운 얼굴을 들 수 없는 심정으로 이 글을 끝맺으려 한다. 오늘 한국교회는 대부흥을 이루었고, 성도수는 천이백만 명이나 된다는데, 부패가 극에 달한 사회에 과연 빛과 소금의 직책은 온전히 저버렸단 말인가? 허다한 교회들은 금력과 권력에 정신이 없고, 기복 신앙에 물든 성도들은 기도원을 메우고, 소위 종교지도자들은 전시 효과만을 노려서 강제 동원하는 대집회를 열고 신문에 대문짝만한 사진을 연일 실어 자기 광고에 힘쓰고 있는 중에 시한부 종말론은 어리석은 신도 뿐 아니라, 온통 사회를 요란케 하여 기독교의 위상이 땅에 떨어지는 펀이다. 이러해도 서로 책임이나 전가하지 회개하고 자숙하는 지도자가 없으니 이 웬말인가? 과연 말세는 말세인가 보다. 우리 다 깨어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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