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자기가 원해서 하는 일2018-05-13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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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은 무척 고달파도 불평이 없다. 내가 시골 과수원에 내려가서 며칠 쉬고 잇는데 복숭아가 한창인 계절이었다. 매일 새벽 7,8명의 장사꾼 아주머니들이 복숭아를 받으러 왔다.

 

그 해에는 유별나게 비가 잦은 데다가 하루는 밤새도록 비가 내려 황톳길이 미끄럽고 진창이 되었다. 읍내에서 오리 길이나 되는 우리 과수원이라 아침에는 장사꾼이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늦잠을 자고 있는데 웬걸 장사꾼 아주머니들이 여전히 몰려왔다. 신발은 흙으로 떡둘레가 되고 옷은 물에 갓 빨아 입은 것 같았다.

 

제 장사이기에 말이지 누가 시켜서 왔다면 불평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게다. 그러나 한 사람도 원망 없이 복숭아를 받아서 머리에 이고 즐거운 얼굴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이(利)가 되니 자원해서 하는 일이라 고난도 괴롭지 않다는 표정들이었다.

 

또 그날 밤에, 비는 그쳤으나 찌푸린 날씨인데도 캄캄하게 어두운 밤 11시경에 20대 청춘 남녀가 복숭아를 사먹겠다고 왔다. 아무리 복숭아가 꿀맛이라도 이렇게 오는 길이 멀고 어두운 밤에 외딴 과수원을 찾아오다니…. ”

 

처녀는 몇 번이나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는지 흙투성이다. 그러나 그들은 복숭아를 깎아서 서로 권커니 자커니 희희낙락하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만약 저들이 부모가 심부름을 시켜서 이 밤중에 왔다면 얼마나 불평이 많았겠는가? 그렇다. 사랑을 위해서 스스로 하는 고생이라 도리어 즐거움이 더한 듯하다.

 

자고로 의(義)를 위하여 스스로 고난을 받는 사람이 많지만 복음을 위하여 사도 바울만큼 고생한 사람도 드물다.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 즉 참고 비방을 당한 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고린도전서 4:11~13)

 

바울도 자기 스스로 원해서 복음을 전하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감히 이 고난을 감당했겠는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린도전서 9:16)

 

소명(召命)의식에서 출발한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로마서 1:14)가 되어 죽도록 충성하였던 것이다.

 

이 바울의 물러설 줄 모르는 복음 전도를 위한 신념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하여,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 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2:7~8)고 하였다. 바울은 속에서 솟아오르는 어찌할 수 없는 예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전하였기에 힘에 부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오히려 감사하였다.(고린도후서 1:8)

 

옛말에 “어디에서나 내가 주인이 되라(隨處作主).”는 말이 있다. 마지못해 억지로 하지 말고 무엇이나 자의적(自意的)으로 원해서 하라는 뜻이다. 그렇게 하면 능률도 오르고 즐겁기도 하리라.

 

원래 사람은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은 즐겁지 않다. 질질 끌려서 사는 인생을 생각해 보라. 얼마나 가련한가. 우리 중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에 빚지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다 자원해서 복음 전도자가 되자! 동시에 어떠한 일이든지 누가 시켜서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마땅히 할 일로 스스로 자원해서 하자. 이것만이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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