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2018-07-1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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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에 “날아가는 새 발자취를 어질러 놓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과 함께 내게 잊혀지지 않는 한 사람이 있다. 1944년 3월 5일경이다. 바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기 5개월 전 일본의 패망을 예감하리만큼 분위기가 어수선할 때다. 나와 함께 과수조합을 창설하여 지도해 온 니시가와란 일본인인 큰 과수원 농장주가 있었다. 나는 그가 50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군에 소집되어 출전했다가 휴가로 돌아왔다는 소문을 듣고 인사차 방문하였다. 마침 그는 과수원 밭에 나갔다 한다. 밭으로 찾아가니 그 사람은 10년생쯤 된 배나무를 베면서 사람이 찾아온 줄도 모르고 열심히 접을 붙이고 있었다.

 

내가 “니시기와 씨!”하고 부르니 깜짝 놀라 돌아보고 반가워하며 일손을 놓고 계면쩍은 얼굴로 말을 꺼낸다. “이런 난리에 나무에 접을 붙이고 있다니 바보스럽기만 하지요? 여기에 심겨져 있는 나무들은 다 좋은 과실을 맺는데 이 나무만은 시원찮아요. 세상이 어찌 될는지 몰라도 평소에 마음먹었던 일이라 휴가 차 돌아온 김에 접을 붙여 놓을까 합니다. 내가 응소하여 간 곳은 제주도인데 내내 수류탄을 등에 지고 적 전차에 뛰어드는 훈련만 하다가 왔습니다. 참 한심하기만 해요!” 하며 씁쓸히 웃는 것이었다. 그때 니시가와 씨는 “내일 이 지구가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고 한 스피노자의 말과 같이 세상이야 어찌되든 내 할 일은 끝까지 내가 한다는 심정인 듯했다.

 

그 후 일본이 패망하고 한국에 와 있던 다른 일본인들과 함께 니시가와 씨도 일본으로 쫓겨가고 말았다. 패전 후 일본이 경제대국이 된 것도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나라를 위하는 것은 말로만이 아니라 내가 선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끝까지 충성하면 이것이 곧 애국이요, 애족이다.

 

공자님이 소시 때 위리(委吏)라는 회계를 맡는 하급관리를 지냈을 때에는 회계를 맞추는 데만 열심했고, 승전(乘田)이란 짐승 기르는 직책에 있을 때에는 소와 양이 무럭무럭 힘차게 자라게 하는 것에만 힘을 썼다 한다. “벼슬자리가 낮으면서 큰소리만 떵떵 하는 것은 죄다. 남의 조정에 서 있으면서 도가 행하여지지 않는 것은 수치다(位卑而言高罪也 立乎人之朝而道不行恥也).”라고 맹자는 말하였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이 바로 요셉이다. 이분은 형제에게 미움을 사서 애굽 왕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가서도 조금도 불평이나 원망이 없이 주인이 시키는 일에만 열심이었다. 보통 아이 같으면 좌절과 낙망에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일도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요셉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시고 도우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주인의 신임을 받고 파격적으로 가정 총무 직까지 맡게 되었다. 그 후 다시 기구한 운명의 희롱이랄까,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연모하다가 요셉이 불응함에 그 남편 보디발에게 참소하여 요셉을 국사범을 다루는 감옥에 사형수와 함께 가두었다.

 

요셉은 어느 누구도 도와줄 이 없는 감옥 속에서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바람결에 등불 같은 신세가 되었다. ‘아! 천도(天道)는 시(是)인가, 비(非)인가?’라고 부르짖고 누구라도 낙망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요셉은 달랐다. 면전(面前)에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심과 절대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었다.

 

이 형언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도 조금도 불평이나 낙망을 하지 아니하고 옥중에서 전옥의 일을 성실과 정성을 다하여 도왔다. 이와 같은 요셉에게 하나님은 인자와 긍휼을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여 옥중 제반사를 전옥을 대신하여 관장하게 하셨다. 이로 말미암아 옥중 죄수의 꿈을 해몽해줌으로써 바로 왕의 인정을 받게 되고 급기야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던 것이다.

 

이로 보건대 믿음의 위인 요셉은 과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놓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린다(盡人事待天命).”는 본보기라 하겠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람이 보든 말든 일의 결과야 어찌 되든 간에 내가 마땅히 할 본분을 다할 뿐이다. 여기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우리 믿는 자의 자부심(自負心)과 긍지(矜持)가 있지 아니하겠는가?

 

이제 2천 년대를 맞이하는 우리들은 사방에 눈을 팔지 말고 각자 선 자리에서 주님만 바라보고 충성하자!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 하시리라”(전도서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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