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웅담과 보혈2018-03-04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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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 시골 장날에는 구경거리가 많아 하굣길에 장터를 거쳐 올 때가 많았다. 한 장날에는 웅담(熊膽)장수가 곰 가죽을 바닥에 깔아 놓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사람들을 모여들게 하였다. 수십 명 사람들이 순식간에 빙 둘러 진을 쳤다. 웅담장수는 먹물을 한대야 가득 담았다. 그리고 칼 끝에 웅담을 찍어 대야 속 먹물에 대니 먹물이 쫙 갈라진다. 다시 휘저으니 시커먼 먹물이 말갛게 되었다. 사람들이 신기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데 웅담장수가 신이 나서 말했다.

 

“보시오, 검은 물이 웅담으로 말미암아 말갛게 되지 않았소, 사람의 몸에는 시커먼 어혈(瘀血)이 돌아다니며 병을 일으키는데 이 웅담을 먹으면 어혈이 변하여 좋은 피가 됩니다. 만병에 좋은 웅담을 사 먹고 다들 병을 고치시오. 이 웅담으로 말하면 지리산 깊은 산중에서 잡은 곰의 쓸개외다.” 멋진 상술에 사람들이 너도나도 사 가던 기억이 오늘날까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내가 예수를 믿으려 할 때 가장 큰 고민이 있었다. “허물이 많은 내가 어찌 예수를 믿고 거룩한 생활을 해낼 수 있을까.” 그런데 예수를 믿기만 하면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가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신다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나는 어릴 때 본 웅담장수가 연상이 되곤 했다. 나의 주홍같이 붉은 죄가 예수님의 피로, 마치 웅담이 먹물을 말갛게 해주듯 백설같이 희게 해줄 듯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 공로 없이 아무 대가 없이 내 죄가 예수의 피로 희어진다고 안이(安易)하게 믿기에는 내 양심이 좀처럼 허락하지 않았다.

 

‘예수를 믿음으로 내 원죄는 사함을 받는다 해도 나날이 짓는 이 죄를 어이하랴, 백 번 죄를 사함 받고 백한 번 죄를 짓는다면 죄는 그대로 있지 않겠는가. 믿어지지 않는 속죄를 믿고 죄 죄하며 맥 빠진 인생이 되어버리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일진대 차라리 불신앙으로 편히 사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고민에 싸여 전전반측(輾轉反側)하다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전도부흥회에 갔더니 부흥 강사가 말하기를 “사람은 일생 동안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이나 간에 행한 대로 자기 행실록책(行實錄册)에 기록되어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설 때 그대로 드러납니다. 선한 일을 한 자는 선한 심판을, 악한 일을 한 자는 악한 심판을 받게 되니 누구라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한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죄 한 번 안 짓고 살수 있을까. 그러니 만인이 다 지옥 가기 마련이다. 어떻게 해도 지옥 가고 말 바에야 차라리 예수 믿느라고 수고하며 세상 재미도 마음 놓고 못 보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아야 않겠는가.

 

나는 내 ‘행실록책’이 어찌 되었는지 궁금증이 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부흥강사에게 물었다.

 

“강사님, 이미 죽은 자는 산 자나 합치면 수백 억이 될 터인데 각자 행실록책이 따로 있다면 그 많은 행실록책을 어디에 비치해 두었으며 일일이 누가 다 기록합니까?”

 

가장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강사는 빙그레 웃으며 “참 좋은 질문입니다. 각자 행실록책은 자기 양심 속에 비치되었고,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이나 행동할 때마다 즉각 즉각 자기 양심이 기록합니다. 그러니 속일 수 없지요.”

 

그러자 성령의 음성이 들려왔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양심 속을 들여다보아라.”

 

나는 고요히 눈을 감고 내 양심 속을 들여다보니 환하게 행실록책이 나타났다. 장장 마다 허리에 횡(橫)으로 줄을 그었는데 상부에는 먹물로 선한 행위가 드문드문 기재되었고 하부에는 빨간 글씨로 악한 행위가 꽉 차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 중에는 어릴 때 이웃집 호박에 말뚝 친 것까지 적혀 있다. ‘과연 세밀하다. 나는 죽었구나.’

 

탄성을 발하다가 가만히 살펴보니 내가 회개하고 예수 믿을 때 그 앞에 지은 모든 악한 행위는 이미 깡그리 지워져 있고 그 뒤에 지은 죄는 군데군데 예수님의 붉은 피가 글씨를 덮어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도 이상해서 성령님께 물었다. 성령님께서는, “네가 회개한 죄는 즉시즉시 예수 보혈이 흘러내려 덮었지만 회개치 않은 죄는 그대로 있느니라.” 하신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감격하여 행실록책에 남아 있는 죄를 조목조목 눈물로 회개하니 붉은 예수님의 보혈이 행실록책에 줄줄이 흘러 주서(朱書)한 죄목을 덮어 없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상부에는 검은 글씨로 씌어진 선한 행위만이 뚜렷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한 번도 죄 지은 일이 없는 사람이요, 선한 일만 한 것으로 되었다.

 

‘아아, 신기하고 보배로운 예수의 피로구나!’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 32:1) 함과 같이 나는 진실로 예수 믿고 복 받는 자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우리는 매일 세면대 앞에 나아가 세수를 하듯, 나날이 회개의 제단 앞에 죄를 고백하고 보혈의 씻음을 받아야 한다. 그리함으로 죄에서 해방을 받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한일서 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