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독선2018-11-25 12:01:27
작성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한다. 싫건 좋건 여러 사람이 어울려서 협동하며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호 협동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독선, 곧 나만이 옳다는 주장이다. 이 세상에 진리는 나만의 독점물이 아니거늘 독선적인 사람은 자기 주관대로 판단하고 상대의 말은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누가복음 16:13)하시니 듣고 있던 바리새인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은 척푼(隻分)없는 주제꼴이니까 저런 말을 하는 것이지 제가 돈냥이나 있다면 감히 저렇게 말 할 수 있겠는가. 가소로운지고.”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나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누가복음 16:15)고 꾸짖으셨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주관대로 바라보면 독선에 빠지기 쉽다. 우리가 독선적인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먼저 독선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를 살펴야 될 줄 안다. 성경에도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요한계시록 2:5)라고 하지 않았는가?

 

첫째, 내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고린도전서 2:8)이라고 하였다. “여남은 집 되는 동리에도 나만큼 충성되고 믿음직한 사람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나 나같이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 공자가 말했다. 공자 같은 성현이라도 배우기를 힘썼다. 스스로 안다는 자는 너무나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안다는 사람은 남의 말에 참견하기를 좋아하고 잘 나서는 위인이라 사람에게 미움을 사기가 일쑤이고 상호간의 화합을 깨는 독선적인 인물이다.

 

어느 여름 방학에 휴가로 고향에 왔다가 나의 과수원을 찾아온 친구를 만났다. 이 사람은 대학 교수로 독실한 신앙인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인지라 반가워서 과수원 원두막에 올라가 과실을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다 자연 학문적인 화제도 오고 갔다. 나는 심히 다행한 일로 알고 경청하고 있었는데, 어떤 대학생 풍의 청년 두 사람이 과실을 사 먹으러 왔다가 우리의 이야기에 끼어들더니 그 중 한 명이 칸트(Kant)가 어쩌니 헤겔(Hegel)이 어쩌니 하며 주워들은 이야기로 득의 만면한 표정을 하며 장광설로 우리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교수님은 말이 없고 나도 묵묵히 듣고만 있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좋은 친구와의 자리를 잡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여도 고소(苦笑)를 금치 못하는 일이다. 무엇을 좀 안다고 그것에 대하여 뽐내고 나서는 사람은 그들의 지식을 선용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니 사랑이 없는 지식은 자신이나 남의 유익을 얻지 못하는 지식일 뿐이다.

 

노자(老子)는 “말하는 자는 몰라서 그렇고 아는 사람은 잠자코 있다(言者不知 知者默).”라고 했다. 참으로 아는 자는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잠자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다.

 

“군자는 세 사람이 같이 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으니 좋은 것은 가려 좇고 좋지 못한 것은 고치도록 한다(君子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而從之 不善者而改之).”라고 공자는 말하였다. 우리가 나만 안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남의 의견도 들어주면 피차 원만한 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다.

 

둘째,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는 것이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린도전서 10:12)하였다. 섰다는 자는 자기 능력을 믿고 자기과신(自己過信)에 빠진 자로 남을 업신여기고 교만하여 남의 의논에 들지 않는다. 이런 독선적 고집은 상호 불신을 낳고, 불신은 갈등을 초래하여 인화(人和)를 얻을 수 없다.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고 했다. 인화를 얻지 못하면 누구와도 일을 함께 도모할 수 없다. 팽이는 스스로 서서 도는 줄로 알지만 팽이채를 맞아서 돌고 있지 않는가? 인간은 누구나 남의 도움 없이는 홀로 설 자가 없다.

 

셋째, 스스로 된 줄로 생각하는 것이다.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갈라디아서 6:3)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현명하고 우수한 사람이라 생각한다든가 또는 다른 사람을 훈계하고 지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기만족(自己滿足)에 도취되어 자성(自省)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런 사람은 자기 자신도 속이는 자이다. 나 아니면 아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내가 하는 일은 다른 이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이다.’라고 착각하게 된다. 이런 일은 소위 지도자가 빠지기 쉬운 어리석음이다.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에게 쫓기어 굴에 있던 선지자 엘리야가 여호와께 호소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하니 여호와의 대답이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열왕기상 19:9~18)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태복음 3:9)고 하시지 아니하였는가? 우리는 ‘내가’라는 자만심을 버리고, 나의 부족한 것을 살펴서 남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겸허함이 있어야 될 줄 안다.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린도전서 4:4)한 바울과 같이 언제나 하나님 앞에 선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겸비한 심정으로 사람들을 접한다면 남과 어울려 살 만하지 아니하겠는가? 그러나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해서 행치 못함을 한할 수 밖에 없다. 오직 예수를 믿고 성령의 도움을 받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빌립보서 4:13).

이전별자(別者)의 지름길 2018-12-02
-독선 2018-11-25
다음대화 2018-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