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청소년 범죄문제2019-01-27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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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도적이 병들어 오랫동안 앓고 누워 있었다. 그가 도둑질을 하여 생계를 꾸려가던 터라 돈도 떨어지고 양식도 없어졌다. 참다 못하여 그의 어린 자식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도둑질을 나서려고 아버지에게 도둑질하는 방법을 가르쳐달라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가 성을 벌컥 내며 “이 자식아, 하필이면 도둑질을 배우려느냐.” 아들을 나무라고 눈물을 짓더라는 것이다. 아무리 도둑일지라도 제 자식만큼은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다를 바가 있겠는가. 오직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은 내가 하지 못한 일을 자식이 성취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근자 우리 나라에 청소년 범죄가 중대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점점 흉악화되는 청소년 범죄 기사가 신문 지상에 날 때마다 우리 기성세대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마음에 우려를 품고, 저들을 책망하기 전에 스스로를 매질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우리들은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못 먹고, 못 입고, 천대와 구박을 받아온 것이 가슴에 한이 되어 어찌하든지 잘 살아 보겠다는 일념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60년대 이후로 급격히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황금만능 사상이 뿌리내리고, 사회적 혼란을 틈타서 동기보다 결과를 중시하여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벼락부자, 벼락출세를 꾀하자는 풍조가 온통 사회를 풍미하고, 이로 인하여 한탕주의와 찰나적 향락주의가 만연되었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전통적 가정교육은 설 자리를 잃고 또한 학교 교육은 입시 위주, 취직 위주가 되어 인간교육의 부재 현상을 초래하였다. 정부는 정부대로 경제성장 추구에 중점을 두고 물량위주로 치 달렸다. 이런 모양으로 상하가 오직 이익만 추구하다 보니 각박한 세상이 되고 그러므로 서로 빼앗지 않고는 못 견디는 풍조가 조성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초래한 근본적 원인을 살펴보면, 과거 우리 민족은 유교와 불교를 신봉해오면서 불교의 자비심과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믿었고 또한 유교의 극기복례(克己復禮)와 경천(敬天)사상을 받아들여 부처님과 하느님을 믿어 죄를 두려워하고 선을 추구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외 심은 데 외 나고 콩 심은 데 콩 난다. 하늘의 그물이 넓고 넓어도 허술하게 새어나는 일이 없다(種瓜得瓜 種豆得豆 天網恢恢 疎而不漏).”는 믿음이 우리 선조들의 생활신념이었다.

 

그러나 일제 36년의 학정과 해방 후의 혼란 통에 유교도 불교도 다 국민 교화의 지도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로 인한 혼란과 사상적 공백에서 오직 물질 위주의 배타적 이익 추구에만 몰두하고, 급기야 경제적 여유가 다소 생기니 아무 생활 철학이나 믿음이 없는 형편에 찰나적 향락주의가 만연하여 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청소년들이 망나니가 될 수 밖에 없고, 더욱이 경제성장에서 오는 상대적 빈궁과 좌절감을 풀기 위하여 범죄 소굴로 전락하는 것은 불가피한 형세이다.

 

죄를 짓고도 죄책을 느끼지 못하는 저들을 볼 때 그 부모에 그 자식이란 개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불의한 일을 위해서라도 내 자식만은 잘 먹고, 잘 입히고 공부 잘 시키면 부모의 도리를 다한 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

 

일본의 한 예를 들어 보자, 자기가 공부하는 학교의 선생님을 때리기가 예사며, 심지어 대학 교수의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야구 방망이로 쳐죽이고 이를 말리는 그 어머니까지 때려 죽였다 한다. 대학 교수의 가정이라면 생활도 비교적 여유 있게 살았을 터이니 그 자식을 모든 면에서 잘 돌보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마음이 황폐해지니 부모까지도 원망하여 이런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믿음이 없는 인간을 재갈 없는 말과 같고, 믿음이 없는 국민은 멍에 없는 수레와 같아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만다. 청소년 범죄에 대한 대중요법으로 소위 스포츠 권장, 오락시설 혹은 엄벌주의 등등 허다한 대책이 제안되고 있지만, 근본 요법 즉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기초를 둔 인간 교육이 더욱 시급하다 하겠다.

 

우리 집에 시골 빈농의 여러 남매의 맏딸로 태어난 소녀가 와 있었다. 이 아이는 시골서 겨우 초등학교를 마치고 향학열에 불타서 서울로 올라온 것이다. 낮에는 심부름을 하고 밤에는 야간 중학교를 열심히 다니며 주일마다 교회에도 잘 출석하였다. 중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중 하루는 시골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문병 차 내려갔다가 며칠을 간호하고 돌아올 때 어머니께 틀니를 하라고 이 소녀로서는 거금인 40만 원을 말없이 드리고 왔다 한다. 피나게 모은 돈을 몽땅 어머니께 드렸다는 것은 참으로 가상한 일이다.

 

일본 대학 교수의 아들과 이 소녀를 비교해 보라. 그 환경을 원망한다면 이 소녀는 몇 갑절 그 부모를 원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녀는 그 마음에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있기에 부모에 대한 사랑도 잃지 않고 있다. 하나님은 영의 아버지 시요, 부모는 육의 아버지시라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는 부모도 공경하게 마련이고 자연히 효도하게 된다.

 

성경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하였다. 예수를 믿는 자가 장수의 복과 생활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부모에게 효도하여야 되고 자연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청소년 범죄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무엇보다 우리 기성세대가 먼저 대오 각성해야 된다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올바른 본을 보여 주기 위하여 경천애인(敬天愛人)의 믿음 생활을 하며 사회정화 운동을 범국민적으로 실천해야 된다.

 

동시에 청소년들에게는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동포를 사랑하는 성실과 정직의 인간 교육을 강력히 추진하며, 신라 때 화랑도와 같이 신앙에 기초를 둔 애국애족의 르네상스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 장차 민족 통일의 역군이 되게 힘써야 될 줄 안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고식적인 미봉책이나 하고 있다면 청소년 범죄 문제는 갈수록 난제가 되고 백년하청(百年河淸)이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