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타락한 육신2018-06-17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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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버릇 개 줄까’,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사람의 품성은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수양이나 신앙생활을 하면 사람이 변화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었다”(베드로후서 2:22)는 격이 되어 완전한 변화란 있을 수 없다.

 

독자 여러분 중에는 기억하실 분도 있을 줄 안다. 여러 해 전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어떤 교회의 성도인데 건축업으로 크게 치부하여, 섬기는 교회에 많은 헌금도 하고 봉사도 열심히 함으로써 장로로 세움을 받아 교인들의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세상이 모르게 숨어서 축첩을 하고 있었다. 신앙 양심에 괴로워는 하면서도 이중생활을 계속하던 중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면 받을수록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질까 두려웠다. 할 수 없이 첩과 헤어지긴 해야겠는데 첩이 이에 불응하므로 고민 끝에 급기야는 첩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것이 발각되어 구속된 후 유치장에서 음독 자살하고 말았다. 어느 누구도 인간의 죄악성을 떠나기가 어려움을 깨닫게 해주는 사건이다.

 

이러한 일들이 비단 이 사람뿐이겠는가? 요석 공주의 간절한 연모를 뿌리치지 못하여 원효 대사는 설총을 낳고 파계승(破戒僧)이 되었으며, 기생 황진이의 유혹에 견디지 못해 지족 대사는 십 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 되지 않았던가?

 

사람이 아무리 도를 닦는다 해도 육신이 거룩해지거나 달리 변화되지는 못하는 법이다. 석탄을 죽자고 씻고 닦아도 희어지는 법이 없음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10)라고 했다. 아담이 하나님을 떠난 후로 인간의 육체는 완전 타락하고 말았다. 타락된 육신은 교육을 받아도 향기 없는 조화같이 겉모양만 아름다울 뿐이다.

 

공자 같은 성인도 “내가 칠십이 되어서야 마음 내키는 대로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노라(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하였다. 하물며 우리 같은 범인이야 칠백 년을 수양한다 해도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불가(佛家)에서 참선(參禪)이나 조금 하고서는 스스로 깨달았다 하여 부처가 된 양 으스대는 것을 ‘귀신의 굴(鬼窟)’에 빠졌다고 한다. 귀신에 사로잡혀 독선(獨善)의 굴을 파고 들어앉아 다 된 듯이 착각하고 있는 꼴을 두고 하는 말이겠다. 더구나 사람이 마음을 달리 먹었다고 하루아침에 변하지는 않는 법이다. 옛날 당시(唐詩)에 나오는 한산자(寒山子)란 시인이 있었다. 그는 가난하여 근심이 많았다 한다. 신년 벽두에 다시는 근심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는데도 그 해 섣달 그믐날도 그 근심은 그대로 있었다. 인간의 결심으로서는 어이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 탄식하여 이렇게 노래하였다.

 

聞道愁難遣,斯言謂不真。
昨朝曾趁卻,今日又纏身。
月盡愁難盡,年新愁更新。
誰知席帽下,元是昔愁人。

 

“수심을 버리기가 어렵단 말을 들었지만 이 말이 진실되지 아니하다고 말하였네. 그러나 어제 아침 내어쫓았는데 오늘 또 다시 내 몸에 감기어 있네. 달은 다해도 수심은 다함이 없고 해가 새로워지니 수심도 새로워지네. 누가 알랴 앉은 자리 모자 밑에 원래 수심 앓던 그 사람이 그대로인 줄을!”

 

사람이 의로워지려고 스스로 힘쓰면 힘쓸수록 죄만 더 짓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애쓰면 애쓸수록 영광을 가리운 일만 하게 된다(로마서 7:20). 아무리 기도를 하고 금식을 한다 해도 내 혈기 하나 죽이지 못하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로마서 7:24)라고 아니할 수 없다.

 

예수를 믿고 올바르게 살아 보려고 금식을 하고 철야를 해도 내가 선해지고 내가 거룩해지려고 한다면 실패의 고배만 마시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 자신에게는 선한 것이 없다(로마서 7:18)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의 섭리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속에 와서 대신 살아 주셔야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에게 내 인생 전부를 믿고 맡기는 것이다(갈라디아서 2:20).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로마서 8:3~4)

 

우리는 오직 겸허하게 두 손 들어 항복하고 그리스도 예수 앞에 나아가자! 이것만이 우리가 살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