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고난도 오히려 행복이어라2017-10-1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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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가요에 얼음 위에 댓닢 펴고 임과 나와 얼어 죽을 망정 이 밤 더디 새우시라.”는 구절이 있다. 사랑은 허다한 고난 중에서도 오히려 행복을 느끼게 한다.


어느 날 내가 심방하다가 중년 부인에게서 이런 간증을 들었다. “장로님, 저는 본시 강원도 첩첩 산중 두메 산골에서 살았답니다. 제가 나이 19세 처녀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단 둘이서 살고 있었는데 급기야 아버지마저 병들어 눕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별 도리 없이 가정살림을 도맡아 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 해 겨울 양식도 떨어지고 아버지 약도 구해와야겠기에 아침 일찍 우리 집에서 30리나 떨어져 있는 읍내로 내려갔습니다. 왕복 60리 산길이라 나 같은 처녀로서는 하룻길이 무척 힘겹지요. 총총걸음으로 갔지마는 읍내에 당도하니 한나절이 넘었습니다. 분주히 다니며 양식이며 아버지 약이랑 세탁 비누 등 생활 필수품들을 사서 포대에 담아 이고 다시 총총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후부터 날씨가 흐리더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산 밑에 당도하니 눈이 펑펑 쏟아져서 발목이 잠길 지경이 되었습니다. 아직 집까지 가기에는 10리 길이 넘는데 어찌하나 싶어 죽자 사자 산길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토끼 길 같은 산길이 눈에 덮여 잘 보이지 않고 쭈르르 미끄러지는가 하면 발을 헛디뎌 푹 꺼지기도 해서 여러 번 넘어지고 주저앉고 하다 보니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산중턱에 다다르니 날도 저물어 갔습니다. 가도 오도 못 하는 처지가 되어 거기서 밤새 헤매다가 얼어 죽지 않나 생각하니 겁이 덜컥 났습니다. 첩첩산중 무인지경에서 이제는 될 대로 되라고 푹푹 빠지는 눈길을 방황하노라니 발가락이 빠지는 것 같고 머리에 인 물건은 무겁기가 천근 같았습니다. 소나무를 붙들고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그때 어디서 야호!’ 하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쳐다보니 등산복 차림을 한 청년이 나를 향하여 내려오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그 청년이 내 앞까지 내려와서 왜 이렇게 늦습니까?’ 하더군요.

 

바로 그 청년은 등산할 때마다 우리 집에서 쉬어가곤 하는 등산객이었습니다. 마침 등산길에 우리 집에 들렀더니 딸이 안 온다고 아버지가 걱정이 태산이라 걱정이 되어 마중 나왔다고 했습니다. 저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지요.

 

청년은 제가 이고 있는 짐을 지고 내 손목을 잡고 산등성이로 올라갔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럽고 고마웠던지 그 청년이 구세주만 같았습니다. 이래서 우리들은 길 없는 길을 눈 속에서 헤매며 집으로 향하는데, 제가 발이 얼어 잘 넘어지니 그 청년은 저를 껴안아 주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청년의 체온이 느껴지며 한 없이 행복했습니다.

 

나는 짐짓 넘어지는 듯하며 그 청년을 끌어안아 보기도 했지요. 추운 줄도 모르겠고, 피곤한 줄도 모르겠고 마냥 즐겁기만 했답니다. 이윽고 집이 가까워지니 차라리 밤새도록 집을 잃고 헤매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겨우 집에 당도했을 때는 벌써 한밤중이었습니다.

계속 눈은 내리고 그 청년은 길이 막혀 오랫동안 머물게 되었지요. 그 동안 우리들은 정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서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눈 속에서 헤매던 그때의 그 행복은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환난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도 이와 같은 행복이 아닐까요?”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최상의 행복이다.”라고 하였다. 인생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날부터 환난의 시작이다. 고해(苦海) 같은 인생길을 나 혼자 걸어가는 그 사람이야말로 처량하고 가엾은 인생이 아니겠는가?

 

인간 환난의 극한 상황에서도 하박국 선지자는 오히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쁨과 소망이 넘쳤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하박국 3:17~19)

 

축복 받을 때만이 하나님이 계시고 환난 당할 때는 하나님이 안 계시는 양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부모가 환난 당한 자식을 더 감싸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 중에 있을 때 가까이하신다. 자신의 인간적 아집(我執)을 끊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 할 때 고난도 오히려 우리에게 복이 되고 기쁨이 된다.

 

환난에 처하여 불평과 자기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하나님 앞이나 사람 앞에 아름답지 못하다. 주어진 그 여건에 순복하지 못하는 그 자체가 자기가 옳다는 아집이 남아 있기 때문이요, 불순종이라는 아담(Adam)의 근성이 처리되지 못한고로 진정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 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사람은 고통 중에서도 기쁨을 누리게 하는 멸고여락(滅苦與樂)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보며 살 수 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하였다.

 

주를 찾는 모든 자로 주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모하는 자로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시편 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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