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문맹퇴치2019-06-16 12:13:49
작성자 Level 10

▶이 말은 일제식민지 치하에서 자구지책(自救之策)으로 우리들 자신이 글 모르는 사람들을 가르쳐 내는 응급교육 방편으로 쓰이던 구호이다.

 

그 당시 우리 민족의 교육수준은 너무나 낮았다. 일제의 농간으로 그들의 잔혹한 수탈에 의해 대다수 농민들이 영세소작농(零細小作農)으로 전락하여 살지 못해 만주로 일본으로 떠나 노동자로 변하는 등 이농(離農)하는 자가 속출하였으니 민족의 장래가 암담하였다.

 

그럴 때 조선일보, 동아일보에서는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하기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도시 학생들로 농촌 계몽운동 겸 농민들의 문맹을 퇴치하고 생활을 개선해 나가도록 종용했고, 또 뜻있는 청년들은 자진 귀농(歸農)하여 농민야학(農民夜學)들을 개설하는 등 계몽에 힘쓰는 이가 많았다.

 

그들은 괴로움과 노예 상태속에 있으면서도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의 날이 단연코 올 것을 잊어버리거나 포기하지 아니하였다.

 

수 일 전, 몇몇 장로님들과 함께 소설 상록수의 실물 모델이었던 1930년 대의 농촌계몽과 교육에 연약한 처녀의 몸으로 헌신하다가 요절한 최용신 선생의 묘소를 가본 일이 있었다. 그녀는 원산 누씨고녀(樓氏高女)를 나와 서울여자신학교에 재학중 화성군 샘골에 가서 농촌교육을 시작하는 한편 부락민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학교 건물을 건립하여 10리 길을 매일 걸어다니며 어린이들을 가르치다가 과로로 병사한 분이다.

 

그 당시 나 역시 “청년들이여! 농촌으로 돌아가자”는 민족 선각자들의 격려에 힘입어 농촌계몽운동의 일환으로 귀농운동에 나서게 되어 황무지를 개간하며 농촌야학을 시작하여 미취학 청소년들을 가르치던 일이 뇌리에 주마등처럼 스쳐가 감개무량하였다.

 

오늘날 한국의 교육열이 세계 상위권에 놓인 것도 그 당시의 많은 밀알들의 싹이 피어난 것이 아닌가 싶다. 성경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 :24)

 

지금 세상은 봉사의 정신을 잃어가는 위기에 처해있다. 자기만을 위하여 애쓰다보면 그들은 부유해질 것이다. 그러나 결코 행복해질 수는 없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운데 참행복이 있고 진정한 부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의 序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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