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수필

제목걸터앉은 신앙과 업힌 신앙2018-07-01 13:3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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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초등학교의 운동회에 초청을 받아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그날은 학생들과 학부형들이 한데 어울려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경기를 하였는데, 특히 6학년 학생들이 벌이는 ‘기마전’과 1학년 학생들의 ‘업고 달리기’ 경기가 제일 재미있고 웃음을 자아내는 인기 종목이었다.

 

‘기마전’은 6학년 학생들이 청팀과 백팀으로 나누어 시합을 하는데, 세 명의 학생이 서로 손을 잡아 손가마를 만들고 그 위에 한 학생이 걸터앉아서 서로 상대방 기수를 떨어뜨리는 경기이다.

 

호각을 불자 양군이 대회전(大會戰)을 하여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양편으로 갈라진 학부형도 자기 편의 승리를 위해 손에 땀을 쥐고 응원에 열중하였다. 손가마를 만들고 있는 학생들도 타고 있는 기수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우왕좌왕 기수가 잘 싸울 수 있게 사력을 다해 애쓰고 있었다. 위에 탄 기수들은 각각 청색 혹은 백색의 모자를 쓰고 의기양양하여 마치 영웅이나 된 듯 용맹을 부렸다. 사실은 밑에서 손가마가 된 학생들이 더 많을 애를 썼으나 오직 박수갈채는 기수가 다 받으며 으쓱으쓱 혼자서 뽐냈다. 그 대신 옷도 찢기고 얼굴도 할퀴어 상처가 나기도 했다. 하여튼 참 용맹스럽고 재미있는 경기였다. 그리고 곧이어 열린 1학년 학생들이 ‘업고 달리기’경기는 학부형들이 각자의 어린 학생들을 등에 업고 정해진 코스를 달려갔다 돌아오는 경기이다. 학부형들이 어린 학생들을 업고 뒤뚱거리며 달음박질하는 꼴이 우스워 모두들 폭소를 터뜨리고 박수갈채 또한 장내는 진동하였다.

 

어른들의 등에 업힌 어린 학생들은 등에 꼭 붙어 고사리 손으로 학부형의 어깨를 꼭 껴안고 다리는 낙지같이 허리에 감아 붙여서 달리는 어른이 양팔을 놓고서 힘차게 달려도 떨어지지 않는 팀이 대개 입상하였는데, 박수는 학부형들이 받았어도 사실은 등에 업힌 어린 학생들의 공도 매우 컸다.

 

나는 이 두 경기를 보고 신앙생활에 큰 계시를 받은 듯 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손가마에 걸터앉아 “내가, 내가”하면서 제 주장만 내세우는 독선적인 신앙인이 있다. 그는 하나님을 자기의 사역자로 부리듯하고 스스로 섰다 하여 자행자지(自行自止)하고 모든 영광을 자기에게 돌리려는 자로 결국에는 남도 상처 입게 하고 자기에게 돌리려는 자로 결국에는 남도 상처 입게 하고 자기도 상처받는 것이다. 선교(禪敎)에서는 “부처가 되려고 하지 말라(莫圖作佛).”한다. “벽돌은 아무리 갈아도 거울이 될 수 없다(塼不成鏡).”는 연고이다.

 

바울과 같은 위대한 사도도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디모데전서 1:15) 하지 않았던가. 전적으로 예수의 등에 업혀 주님과 일체가 되어, 주 동하면 나 동하고 주 정하면 나 정하여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로마서 14:8)하는 신앙인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은 날마다 죽고 그리스도만 존귀히 되기를 바라는 이들이다(빌립보서 1:20). 결과적으로 매사에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은혜를 끼치는 것이다.

 

걸터앉은 신앙인은 교회에서 봉사도 잘 하고 열심도 있고 수고도 아끼지 않으나 결과는 주님께 영광 돌리기보다는 자기의 영광만 취하려 하기 때문에 칭찬받기를 좋아하고 조그마한 비판도 용납지 못하고 교회에 분쟁과 상처를 입히는 일이 많다.

 

그러나 업힌 신앙을 가진 이는 잘 나서지는 않지만 일단 밑은 일은 말없이 책임완수하고 언제라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비난도 참고 견딘다. 그리고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서도 감사하는 생활을 한다.

 

테니슨의 시에 “신앙은 훤화한 말 가운데서도 동요하지 않으며 아니오, 옳소 하는 분요한 가운데서도 신앙은 홀로 명랑한 태도를 가지고 있도다. 신앙은 가장 약한 판국에서도 반짝이는 가장 좋은 것을 내다보며 해가 하룻밤 동안만 감추인 것을 보는도다. 그것은 겨울 싹을 통하여 려름을 찾아 내다본다. 그것은 꽃이 지기 전에 열매를 맛보고 소리 없는 종달새 알에서 종달새 소리를 듣는도다.”함과 같이 업힌 신앙인은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의지하여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립보서 4:11) 바울 사도도 업힌 신앙인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