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수필

제목소신을 가지고 행하라2018-08-19 10: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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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기러기 한 마리가 있었다. 가을이 되어 철새의 이동이 가까워졌을 때 기러기는 거위 몇 마리를 발견하였다. 기러기는 거위들에게 동정을 품게 되었고 그들을 두고 떠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기러기는 거위들을 설득하여 자기네들이 날아갈 때 함께 따라가도록 결심하기를 바랐다.

 

이렇게 하기 위해 기러기는 거위들과 접촉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고 기러기는 거위들에게 조금만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도록 유도해 보았다. 점잖은 거위로서 땅 위를 비틀거리며 걸어 다니는 그 가련한 속된 생활에서 해방되어 가능하면 기러기를 따라갈 수 있게 하고 싶은 심사에서였다.

 

처음에는 거위들도 그것을 매우 흥미 있게 생각하였고 기러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들은 기러기의 하는 일을 본받기에 지치고 말았다. 그래서 거위들은 기러기에게 모진 말을 했다. 즉 ‘기러기는 경험도 없는 공상적인 바보’라는 비난이었다.”

 

이상은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기러기란 글 속의 한 부분이다.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배척을 받는다지만 기러기는 왜 거위를 위해 주고도 거위에게서 배척을 당했을까?

 

첫째, 거위는 기러기 닮기를 좋아했다. 자기도 기러기와 같이 먼 창공을 날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위는 아무리 기러기를 본받고자 해도 날개가 자라지 않으니 애쓰면 애쓸수록 지치기만 했다. 이래서 거위는 실망하고 말았다.

 

둘째, 거위는 기러기가 부러웠고, 날 수 없는 자기가 더욱 비참해 보였다. 그러니 거위로서는 이 콤플렉스를 메우기 위하여 기러기를 이유 없이 미워하게 되었다.

 

셋째, 거위는 자기가 옳고 훌륭하다고 내세우기 위하여는 기러기를 깎아 내려야만 했다. 이런 형편이고 보니 기러기는 억울하게도 거위로부터 비난과 공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자고로 성인은 의롭다고 한다.

 

옛 글에 “제비가 어찌 따오기의 뜻을 알랴(燕雀安知鴻鵠之志).”하였다. 내가 못하는 일을 남이 하면 공연히 미워지기 마련이다. 이것이 예수님과 바울과 그 외에 참된 주의 종들이 다 핍박을 받는 연유이다.

 

하루는 공자가 나무 밑에서 제자들에게 도(道)를 가르치고 있는데 공자를 시기하고 미워하던 환퇴란 자(者)가 힘이 세어 나무를 뽑아 공자를 내리쳤다. 그러나 다행히 공자가 맞지 아니했다. 제자들이 속히 피하라고 권유했으나 공자는 태연히 “하늘이 내게 덕을 낳게 했으니 환퇴가 나를 어이하랴?”하였다.

 

예수께서도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태복음 7:16) 하시지 아니하였는가?

 

다시 키에르케고르의 글로 돌아가 보자. 어떤 의미에선 기러기가 해보려고 한 일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과오였다. 왜냐하면 거위란 놈은 결코 기러기가 될 수 없지만 기러기는 곧잘 거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법칙이다. 기러기가 칭찬할 만한 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만사를 제외하고 먼저 한 가지 일을 유의했어야 했다. 즉 자기 자신을 보존 했어야 했다. 기러기가 거위들이 어느 모로나 자기를 지배하려고 드는 것을 알아차리면 그때는 “떠나가라 기러기와 함께 떠나가라”고 키에르케고르는 당부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기러기는 거위의 비난에 지나친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고 갈 길을 갈 뿐이다. 낙락장송을 개미가 흔들고 중천에 밝은 달을 두꺼비가 시비한들 무슨 상관이랴! 길가에 있는 나무는 아이들에게 돌로 얻어맞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과일이 열려 있으니까. 과일이 없다면 누가 공연히 돌을 던지겠는가?

 

맹자(孟子)에 이런 글이 있다. “스스로 돌아보아 의롭지 않으면 낡고 헐렁헐렁한 옷을 입은 사람에 대해서라도 내가 겁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지만 스스로 돌아보아 의롭다면 천만 사람 앞에서라도 나는 겁내지 않고 갈 것이다.”

 

바울도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에게나 다른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린도전서 4:3~4)

 

하나님이 우리들의 착한 동기를 아시고 더욱이 착한 목적을 성취해 주실 줄 믿을진대 사람들이 우리에 대하여 어떻게 말을 하든 개의할 필요가 없이 오직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수행할 뿐이다.

 

이제 인도의 성자 썬다싱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만약 장님이 손으로 더듬으며 길을 걸어온다면 눈뜬 사람은 그가 부딪치지 않도록 길을 비켜 주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장님이 자기에게 갑자기 부딪쳐왔다면 화를 내는 대신에 도와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장님이 부딪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소상해 한다면 그것은 그가 장님보다 더욱 눈이 멀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상식과 동정심이 결핍되어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말이다. 그러므로 만약 누가 우리들이 진리를 따르는 까닭 하나만으로 박해한다면 화를 내는 일이 없이 그를 용서하고 사랑으로써 그를 위해 기도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무런 응답이 없이 반항을 계속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아무것도 잃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리가 되시는 분을 위하여 하였고 더구나 그분은 우리에게 진리를 볼 수 있는 시력을 주셨으며 또 그분은 우리의 보상이 되시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