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대화2018-11-18 12: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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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생은 대화로 시작하여 대화로 마친다. 그만큼 대화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 루엘호훼가 말하기를 “대화란 인간에게 있어 삶 혹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황금 천냥이 귀한 것이 아니요, 사람의 말 한 마디 얻는 것이 천금을 얻는 것보다 낫다(黃金千兩未爲貴 得人一語勝千金).”는 옛 글이 있다.

 

인간은 기계장치의 오동작을 알기 위해 경보장치를 해두고 경보가 울리면 즉시 대처하여 기계를 바로 잡을 줄은 알지만, 인간 자신의 잘못된 신호 즉 불안, 욕구불만, 우울, 피로, 죄책, 미움 등을 무시해버릴 때가 많다. 이로 인해 정신적인 장애를 일으키는 수가 허다하다. 이는 서로 대화를 통하여 감정을 풀어놓을 때 해소될 수 있다.

 

하루는 이십 사오 세 되는 묘령의 처녀가 잔뜩 침울한 얼굴로 상담실을 찾아왔다. 애인이 죽어 너무 실망하여 음독 자살을 기도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는 사연이다. 나는 “애인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타이르고, 단테는 애인을 잃고도 그 슬픔을 승화해서 불후의 명작 신곡(新曲)을 쓰지 않았느냐며 여러 가지로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자 그녀는 점점 얼굴이 밝아지고, 일어설 때에는 미소를 지으며 “장로님, 저도 새로운 마음으로 잘 살아보겠어요.”라고 인사를 하고 빛나는 눈동자로 걸어나갔다. 참으로 흐믓한 일이 아닌가? 이제 대화의 이모저모를 살펴 보고자 한다.

 

● 대화란 독백(獨白)이 아니요, 상대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사랑으로 참고 들어 주는 대화는 성공한다.

 

● 말은 정확히 하고 정확히 듣는 것만으로 족한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견해를 생각해 보고자 하는 마음씨가 필요하다. 이 마음은 서로의 존경도에 대한 척도이다.

 

● 상대의 말을 듣는 방법에는 거부반응과 수용반응의 정신 자세가 있다. 다른 사람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자신을 주는 것인 동시에 자기 자신 안에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옛 글에 “얼굴을 맞대고 함께할지라도 마음은 천산이 가리었다(對面共話心隔千山).”했다. 대화는 피차 마음을 툭 털어놓고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주고받아야 참 대화가 된다.

 

● 말은 말 자체의 의미보다도 환경과 몸짓과 표정과 언어의 억양 등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애인을 향해 생긋 웃으며 “당신은 미워요.”할 때 상대는 “당신이 좋아요.”라고 해석한다. 불쾌한 표정에 거센 억양으로 “잘 해보시오.”할 때 상대에게는 “하지 마시오.”로 들리게 마련이다.

 

● 자기 자신을 알고 상대방의 복잡한 뜻을 함축된 의미로 알아들을 줄 안다는 것은 좋은 대화의 길로 통하는 첫 단계이다. 솔직히 털어놓고 의논한다면 피차 심리적 갈등은 쉽게 넘을 수 있다.

 

● 무의식적인 대화라도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고 전달받는 이상의 깊은 친밀감을 나타낼 때가 있다. 길에서 우연히 이웃을 만나 “어디 가십니까?”하는 인사 한 마디가 이웃간의 깊은 정을 느끼게 한다.

 

● 대화는 상대를 진정한 인간으로 대해주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 듣는 사람이 자기의 느낌이나 자기 하고 싶은 생각대로 상대방의 말을 채색해버릴 때 그 마음에 와 닿는 것은 흔히 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경우가 된다. 더욱이 증오나 분노로 말미암아 감정이 상해 있을 때의 언어란 거의 본심을 떠나버린 상태이다. 이럴 때에는 차라리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이 낫다.

 

● 상대방의 이야기를 가로채서 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혼자 신나게 지껄이는 사람이 있다. 이는 상대방을 피곤하게 하고 기분을 상하게 한다. 상대방에게도 말할 기회를 주어야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진다. 성경에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잠언 17:27)하였다.

 

● 마음에 없는 말로 지나치게 남을 칭찬하거나 또한 자기 자랑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듣기에 거북하다.

 

● 대화에서는 예절에 대한 자세한 것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친절하고, 상냥하고, 사려 깊고, 참을성 있고, 즐겁게 하기를 힘쓰자. 친한 사이라고 무심히 욕지거리를 하고 상대의 약점을 농조(弄調)로 지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옛날 안평중이란 사람은 오래 사귈수록 더욱 공경했다 한다 (子曰 晏平仲善於人交 久而敬之). 본받을 만한 일이 아닌가?

 

● 진실되고 경우에 맞는 말은 가장 힘이 있다. 공연히 거짓말로 꾸며봤자 언젠가는 탄로나고 아무 소용이 없다.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나의 미워하는 것임이니라”(스가랴 8:16~17)고 하나님은 경고 하셨다.

 

● 공격적이 아닌 말, 즉 “당신은 왜 하는 짓이 이 모양이오.”보다는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어떨까요?”식으로 말하자. “용서하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미안해요.”등등의 말보다 더 좋은 감정을 풀어주는 치료약은 없다.

 

● 말을 안 하고 있으면 속이 상한다. 그러나 본 대로 들은 대로의 절반만 말하자. 사람은 원래 눈이 둘이요, 귀가 둘인데 입은 하나이다. 이는 보는 것과 듣는 것의 절반만 말하라는 창조주의 뜻이 아닐까? 우매자는 말을 많이 한다 했다(전도서 1:14)

 

● 끝으로 대화에 가장 긴요한 요건은 상대가 말을 마칠 때까지 참고 들어 주는 일이다. 서로가 남의 말을 가로챈다면 대화는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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