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2019.04.14] 성경에 계시된 불신자의 실상(實狀)2019-04-14 12:17
작성자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엡 2:1∼5)

 



사람은 자신의 실상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보다 급선무는 없습니다. 실상이란 실제의 상태입니다. 우리가 거울을 들여다보면 자기 겉모습의 실상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영적 실상은 거울을 통하여 볼 수 없습니다. 인간의 영적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거울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여 자신의 실상을 확실히 알게 되면 하나님께로 나아오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됩니다.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면 자신이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으며 결국 심판을 받아 지옥 형벌에 처하게 되는 죄인이라는 실상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에 관하여 매우 분명하고 충분한 지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 아직도 지옥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즐겁지 않아도 지옥에 관하여 얘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 하였습니다. 지옥이 없다면 성경에 그토록 많은 구절이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에 관해 기록되었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기록되기를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지옥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세상에 오심과 죽음과 부활이 필요치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은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에서와 지옥형벌에서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요 3:16, 롬 5:8,9) 만일 지옥이 없다면 복음을 전할 이유가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라고 예수님이 명령하셨습니다.(막 16:15,16)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와 희생이 요구됩니다.     



예수님은 지옥에 있는 사람의 상태에 관하여, 지옥의 실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눅 16:19∼31) 성경은 지옥에 관해 말할 뿐 아니라 그곳을 피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피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입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두 종류의 인생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인의 인생이고, 다른 하나는 불신자의 인생입니다. 사람이 내릴 수 있는 두 종류의 결정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결정과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결정 둘 중에 하나입니다. 사람의 영혼에는 두 종류의 운명이 있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것과 지옥으로 가는 것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스스로 선택할 권한을 부여하셨습니다. 지옥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사람의 죽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인 죽음은 예기치 못하게 오며 누구에게나 옵니다. 지옥에 들어가지 아니하려면 지금 결단해야 합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 시간 결단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면 지옥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지옥에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한 사람도 멸망치 않고 다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인들을 죄와 마귀와 멸망에서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죄를 대속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과 지옥의 실상을 생각하면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선한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지옥으로 가는 자를 천국으로 향하게 하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불신자들에게 그들의 실상을 명확하게 알리십시오. 이를 위하여 성령님의 도움을 간구하십시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기쁨을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조용목 목사님 신앙칼럼 ‘푸른 초장 맑은 시내’ 말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