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2019.08.25]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2019-08-2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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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4,15)

 



사람의 일생에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관련하여 사람들을 분류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마음이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사후세계나 영원하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식을 주셨습니다.(전 3:11) 무신론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인식능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존재를 고의로 부정해버리는 의지에 있습니다. 공산주의 체제로 사람들을 속이고 무자비하게 지배하려면 자신의 양심에 일어나는 가책을 억눌러야 하기 때문에 공산주의는 무신론에 기반을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거나 억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갖지 못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을 헛되게 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 관하여 구약성경 이사야 44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상숭배자들은 동일한 나무를 가지고 신상을 만들어 그 앞에서 복을 달라고 비는 용도로 사용하는 한편 몸을 따뜻하게 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기 위한 연료로도 사용합니다. 우상숭배자들의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였거나 듣기를 거절하는데 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의(自意)로 해석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왜곡된 지식을 가진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성경을 왜곡되게 해석하고 믿는 것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어 꾸짖고 가르치셨지만 목이 곧고 마음이 둔하여진 그들은 도리어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고향인 나사렛을 방문하신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말씀하실 때였습니다. 오늘날도 나사렛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자기 생각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하여 왜곡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이비 이단들도 그러한 부류에 속합니다.     



넷째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이하고 놀라운 일을 목격하여 탄복하고 하나님의 권능을 증언하면서도 여전히 우상을 섬기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리오 왕은 사자 굴에 던져 넣은 다니엘이 무사한 것을 보고 모든 백성에게 이같이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내 왕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니엘의 하나님을 떨며 두려워할 것이다. 그분은 살아 계시고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단 6:25∼27). 그런데 기이하게도 다리오 왕은 여전히 우상을 섬겼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고 듣고 체험하여 하나님이 계심을 알면서도 섬기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섯째는, 하나님을 알고 일생 동안 변함없이 섬기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영도자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웠음을 느끼고 백성의 지도층 인사들을 불러 모으고 고별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자신의 의지적 결단을 분명하게 표현했습니다. 이어서 백성들에게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망시키실 것이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는 굳은 결심과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사탄이 환난, 핍박, 유혹과 온갖 간계로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호수아 같은 심정을 가지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며 섬기겠습니다. 신뢰와 순종으로 섬기겠습니다. 진실과 사랑으로 섬기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조용목 목사님 신앙칼럼 ‘푸른 초장 맑은 시내’ 말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