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제목[2018.11.04] 원칙과 소신2018-11-04 11:4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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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엡 6:24)

 



사람은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원칙이란 근본이 되어 두루 적용되는 법칙입니다. 삶의 원칙이 없는 사람은 일관성 있게 처신할 수 없습니다. 원칙이란 배의 돛과 노 혹은 스크루와 키 같은 것입니다. 돛이나 노 혹은 스크루나 키가 없는 배는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떠밀려가게 됩니다. 소신이란 자기가 믿고 생각하는 것이 있어서 그대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신껏 행한다는 것은 줏대를 가지고 당당히 행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생각 없이 행동하거나 남의 말에 동요하거나 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꿋꿋이 가지고 처신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에는 반드시 적용되어야 하는 대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변함없이 믿고 사랑하며 섬긴다는 원칙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물들을 관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체로서 하나님과 선악과 언약을 맺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대상이 됨으로 더욱 존귀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가져야 할 삶의 대원칙은 성경에 계시된 여호와 하나님만을 변함없이 믿고 사랑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원칙에 합당한 소신을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들은 이러한 원칙과 소신이 분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엘리야 선지자는 걸출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엘리야에 관한 기록을 보면 그가 가진 원칙은 요지부동이지만 그 원칙에 합당하게 소신껏 행동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합 왕이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릴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엘리야는 여호와 하나님만 섬긴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우상 숭배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소신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24시간 내에 그를 죽이겠다는 왕후 이세벨의 통첩을 받자 황망하게 브엘세바까지 도망하였습니다. 그리고 홀로 광야로 하룻길을 더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 앉아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특이한 방법으로 그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하셔서 다시 소신껏 행동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됩니다.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구약시대와는 다르게 계시하셨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므로 우리가 명확하게 이해하고 알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칭호 가운데 삼대 호칭은 ‘엘로힘’ ‘여호와’ ‘아도나이’입니다. 그 중 ‘여호와’는 하나님이 직접 자신의 이름으로 계시하신 고유명사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언약 관계를 나타내는 경우에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구원의 약속을 주시고 이를 이루시는 구원자로 거의 모든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와 구원에 관련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모든 언약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온전히 이루십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계시하셨으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고 밝히 계시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3절에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1장 17절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믿고 사랑하며 섬기는 하나님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삶의 대원칙은 성경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만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적용해야 하는 모든 원칙과 소신은 이런 대원칙에 기반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원칙에 굳게 서서 매사에 소신껏 처신하시기 바랍니다.




(조용목 목사님 신앙칼럼 ‘푸른 초장 맑은 시내’ 말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