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2019.03.24] 내 마음에 맞는 사람2019-03-2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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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행 13:21,22)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한 기록을 보면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혹은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여”라는 말이 유다 역대 왕들에 대한 평가기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이런 면에서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어떻게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얻게 되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다윗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사명감을 가지고 성실하게 수행하였습니다.     



소년 다윗은 형들이 다 싫어하는 양치는 일을 맡아 아버지와 형들에게 불평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하였습니다. 심지어 목숨을 걸고 양 떼에서 새끼를 움켜가는 사자와 곰을 뒤좇아 가 붙들고 싸워서 죽였습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하고 즐겁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사람에게 하듯 하지 않고 하나님께 하듯이 하였기 때문입니다. 성실은 하나님의 품성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이러한 사람입니다.

 


둘째, 다윗은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권위를 존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결정에는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또한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므로 이스라엘이 승리를 얻게 되자 백성들이 환호하였습니다. 그러자 사울 왕은 다윗을 경계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런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다윗에게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왕을 살려 주고 추종자들에게도 사울을 해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행한 까닭은 사울 왕에게 위임된 하나님의 권위를 중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삼상 24:6, 26:9∼11)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남용한 사울 왕에게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지만 다윗 자신이 심판자의 자리에 서는 월권행위는 하지 않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란 하나님의 권위를 중하게 여기는 이러한 사람입니다.     



셋째, 다윗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섬겼습니다.


    


다윗은 많은 세월을 사울 왕의 추적을 피하여 도피생활을 하였습니다. 이웃 나라로 도피하여 이방 왕의 도움을 입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상 섬기는 나라에 머물러 이방 왕의 도움을 받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 우상종교를 섬기는 행위는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란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만을 섬기는 이러한 사람입니다.


    


넷째, 다윗은 예배 드리기를 갈망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 다윗이 사울 왕의 추적을 피하여 다닐 때 가장 소원했던 것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의 성소에 나아가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인 성전을 건축하기를 열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를 허락하지 않으시자 성전 건축을 위한 자재와 건축 비용과 기술자들을 넉넉하게 예비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성전 건축 설계까지 마쳤습니다. 그리고는 이 모든 것을 아들 솔로몬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다윗은 이같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큰 즐거움과 특권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란 예배 드리기를 갈망하고 즐거워하는 이러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윗의 성품과 신앙적 태도에도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이러한 다윗의 성품과 신앙적 태도를 본받아 행하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로 불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조용목 목사님 신앙칼럼 ‘푸른 초장 맑은 시내’ 말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