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제목[2018.04.08] 신앙생활을 왜 그토록 어렵게 합니까!2018-04-08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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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마 7:13,14)

 



▶“신앙생활을 왜 그토록 어렵게 합니까!” 이 말은 불신자가 신자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배와 봉사에 힘쓰며 예수님 외에는 구세주가 없다고 믿는 사람을 향하여 다른 어떤 신자가 이를 딱하게 여겨서 한 말입니다. 이런 말이 얼마나 우매한 말인가에 대하여, 올바른 신앙생활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그 일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행위로는 죄인이라는 본질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주 쉽습니다. 이는 놀라운 역설입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고 형벌에 처하여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인생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속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정죄 받지 않습니다. 죄가 없는 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사함 받고 의롭다는 판결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들은 어렵고 힘들게 신앙생활 할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나기 전과 후의 차이는 추구하는 것이 다릅니다. 사고방식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합니다. 영의 일이란 구체적으로 예배와 복음전파를 중심으로 모든 일을 계획하고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육신의 일이란 인본주의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신상의 영달만을 위하고, 인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일을 계획하고 행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상속을 받게 됩니다. 영생과 부활과 천국 그리고 상급을 받게 됩니다. 의인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입니다. 기도에 힘쓰고 모이기를 힘쓰며 성도들을 돕기 위해 힘쓰고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힘쓰며 주님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많고 그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노아입니다. 노아는 당대에 의로운 사람으로 흠이 없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중대한 발표를 하셨습니다. 홍수 심판을 예고하시고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하셨습니다.(창 6:17∼21)     



하나님의 약속과 지시를 받은 노아는 사람들의 조롱과 비난에도 개의치 않고 준행했습니다. 오랜 세월에도 지치지 않고 준행했습니다. 그는 어렵고 힘든 좁은 문과 협착한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방주가 다 건조된 어느 날 하나님이 노아에게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비가 내리지 아니하는 가운데 노아가 아들들과 아내와 자부들과 함께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유예하신 칠 일이 지나자 하나님께서 친히 방주 문을 닫으셨습니다. 온 세상은 물에 잠겼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거역한 자들은 다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20절에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하였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이 가까울수록 좁은 문과 협착한 길로 가는 것을 더 깊이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더 어렵고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좁은 문과 협착한 길로 가는 성도들은 어렵고 힘든 신앙생활을 할지라도 “신앙생활을 왜 그토록 어렵게 합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는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이러한 기쁨과 보람은 세상이 줄 수 없고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조용목 목사님 신앙칼럼 ‘푸른 초장 맑은 시내’ 말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