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제목[2018.04.22] 새 생명 그리고 풍성한 생명2018-04-22 13: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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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신약성경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과 기사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핍한 상태가 풍요한 상태로 변화된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두 가지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물이 포도주가 된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사건 기록을 보면 날짜와 장소를 구체적으로 명시함으로써 시간과 공간 속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혼인잔치 집에는 연일 손님들로 붐볐고, 잔치 막바지에 가서 포도주 항아리가 바닥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를 먼저 알게 된 마리아는 예수님이 혼인잔치 집의 곤경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예수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하인들이 이유 불문하고 예수님의 요청대로 여섯 개의 돌 항아리에 물을 가득히 채우고,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연회장에게 전달되는 순간 매우 질이 높은 포도주가 되어 있었습니다. 잔치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서 예수님을 초청하였기 때문에 결핍한 상태가 풍요한 상태가 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적 사건이 주는 메시지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질적인 변화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의 영혼과 삶과 육체에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하여주십니다. 영혼이 거듭나게 됩니다. 의인이 되고 성도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시민이 됩니다. 이 땅에서 주를 섬겨 행하는 모든 일들이 영원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부활하고 변화된 몸을 가지게 됩니다.     



다음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써 수많은 군중이 배부르게 먹게 된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휴식을 취하시려고 제자들과 함께 한적한 곳을 찾아 벳새다 마을 근처 빈들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먼저 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큰 무리를 보시고 마치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시고 그 중에 있는 병든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어느덧 날이 저물자 예수께서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게 하겠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빌립이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 어치의 떡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느냐?” 하였습니다. 잠시 후 안드레가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안드레에게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사람들을 백 명 혹은 오십 명씩 모여 앉게 하도록 제자들에게 지시하셨습니다. 무리들이 먹을 떡이 없는데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 먹기 위한 준비부터 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감사기도를 드리신 다음, 떡을 떼서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무리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시고 물고기도 그와 같이 하셨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무리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고, 제자들이 남은 조각을 거두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이 두 개의 사건은 모두 결핍을 풍요로 변화시킨 사건입니다. 그런데 차이점은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서 행하신 기적은 질적인 변화가 있었고, 벳새다 들판에서 행하신 기적은 양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 두 개의 대조적인 사건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경험하게 되는 변화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종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새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새 생명은 풍성한 생명입니다. 영원히 천국에서 살게 되는 생명입니다. 이는 우리의 영혼에 일어난 질적인 변화와 양적인 변화입니다.





(조용목 목사님 신앙칼럼 ‘푸른 초장 맑은 시내’ 말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