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2020.02.09]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는 성령님2020-02-09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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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4∼9)

 



세상을 책망하시는 성령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님, 가르쳐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에 이어서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는 성령님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성령께서는 복음이 온 세상 만민에게 전파되도록 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 죄 사함 받고 영생을 얻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 가게 됩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소식 중에 이보다 더 기쁜 소식, 복된 소식은 없습니다. 복음을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는 것이 자명한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의 역할이 매우 중대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성령께서 주도하십니다. 성령님은 전도자에게 열심과 용기를 주시고 권능을 주십니다. 구속의 복음이 널리 전파되도록 일하십니다.     



이를 위하여 성령님의 주도하에 교회가 설립되어 활발하게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 사이의 과도기적 기간은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선교의 기간입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에는 성령 강림으로 교회가 탄생되고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었습니다. 사도들뿐 아니라 모든 성도가 적극적으로 활발하게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세상을 떠나갔으나 성령께서는 여전히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려고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지금도 복음은 온 세계 만민에게 전파되고 있습니다.     



둘째, 성령께서는 성도들에게 권능을 주셔서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는 성령께서 주시는 권능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복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복음은 믿음이 생기지 않으면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게 되는 것은 성령의 권능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성령의 권능을 입어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파할 때 성령의 권능으로 표적이 나타나면 완고한 사람들이나 적대감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이 쉽게 열려지게 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는 말씀대로 복음 전하는 자는 성령의 권능을 구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셋째,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이 이루신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요 16:14,15)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것으로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것은 아버지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자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달리 말하면 그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과는 관련 없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알리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 외에 인간의 사상과 철학과 종교를 가미시켜 전하는 자는 스스로 자신이 성령님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복음 전파를 통해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따라서 전도자가 자기를 과시하고 자기 영광을 나타내려고 한다면 그는 성령님을 거슬려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모이고 기도하고 봉사하는 곳에 성령께서 임하시고 권능을 부어주십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봉사하는 모든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드리고 봉사하는 것은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며, 성도들에게 주어진 영광스러운 특권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는 성령님이 함께하십니다. 여러분은 일생을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복음 전파를 위하여 쓰임 받는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조용목 목사님 신앙칼럼 ‘푸른 초장 맑은 시내’ 말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