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2012.02.05] "WCC란 무엇인가?" - 제9장 …①2012-02-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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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란 무엇인가?' - 제9장 신앙고백 형식주의…①

WCC는 로마가톨릭교회와 일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교회의 첫 번째 표지(標識)인 '하나님의 말씀 선포'의 자리에 '성만찬'을 대체했다. 종교개혁자들과 개신교회는 그 표지에 교회의 서고 넘어짐이 달려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WCC는 신앙과 제도와 신학이 다른 여러 형태의 교회들을 일치시키려고 가장 중요한 것을 포기했다. WCC는 로마가톨릭교회와 정교회와 개신교회를 하나로 묶고자 두 개의 중요한 문서들을 작성했다. "벰 문서(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 1982)"는 세례, 성만찬, 봉사(직제)에 관한 것이고, "하나의 신앙고백(Confessing one Faith, 1990)"은 공동의 신앙고백문이다. 이 문서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례전에 종속시키며, 성직자의 특별사역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평신도 사역을 경시한다. 하나님의 섭리와 교회의 시련 속에서 발전한 신앙고백과 신조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신앙고백을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381)에 축소시킨다. 21세기의 기독교 협의회적 교제체가 4세기의 신앙고백문을 교회일치의 충분조건으로 삼는 것은 역사를 후퇴시키는 일이다. 신앙고백은 당대의 교회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신앙과 신학을 정리하여 일목요연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 일치에 필요한 신앙고백은 세계화, 종속이론, 환경보전, 포스트모더니즘, 상대주의 진리관,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에 대응하는 내용을 포함해야 하지 않는가?
1. 교회의 표지: 성만찬, '하나님의 선교'
WCC는 1950년대 초까지도 '하나님 말씀 선포'를 가장 중요한 교회의 표지로 여겼다. "토론토 성명서"(1951)는 "여러 교회들 안에 '교회의식'이라고 불리는 참 교회의 요소들이 있으니 곧 말씀의 설교, 성경의 가르침, 성례전 집례이다. 이 요소들은 참 교회 생활의 희미한 그림자 그 이상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정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가 가맹한 후, WCC의 교회표지 이해가 바뀌었다. 벨기에 루뱅에서 모인 'WCC 신앙과 직제위원회'(1971)는 "성만찬에서 우리는 여기에 지금 현존하게 된 그리스도의 보편적 행위들에 참여하기 때문에, 성만찬의 기도는 항상 보편적 성격과 지역적 성격을 모두 가진다"라고 했다. 1973년 러시아 자고르스크에서 모인 신앙과 직제 실행위원회는 교회를 성례 공동체로 규정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모인 WCC 신앙과 직제위원회(1975)는 "예수 그리스도는 성만찬이 행해지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든지 존재하며, 그가 존재하는 곳에 교회도 존재한다"라고 했다. 공동으로 성만찬을 거행하는 것이 교회에 주어진 하나님의 지상명령이라고 했다. 에큐메니칼 교제의 핵심을 "하나의 신앙과 하나의 성만찬적 교제 안에서… 가시적 일치라는 목표에 교회들을 부르는 것"으로 규정한다. WCC는 다양한 교회들의 가시적 일치를 도모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선포'의 자리에 성만찬을 대체했을 뿐만 아니라, 성만찬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포용했다. 성만찬을 하면서도 그 의미를 달리 생각하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의 신앙고백적인 성찬이 될 수 없다. 형식은 같지만 내용이 같지 않다. 루터파의 공재설, 칼빈파의 영적임재설, 쯔빙글리파의 기념설은 차치하더라도 종교개혁자들이 강력히 거부한 로마가톨릭교회의 화체설, 희생교리를 묵인한다. 동상이몽(同床異夢) 형태의 성만찬을 함께 하고 있다. WCC는 서로 간의 이견 차이를 좁히고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아래와 같은 에큐메니칼 성만찬 신학을 계발했다.
2. WCC의 성만찬 신학
WCC가 만들어 낸 성만찬 신학은 로마가톨릭교회의 화체설, 루터파의 공재설, 쯔빙글리파의 기념설, 칼빈파의 영적 임재설을 조금씩 반영하는 것 같으나 그 어느 것에도 연연하지 않는다. 성만찬을 '하나님의 선교' 패러다임으로 정의하고 다섯 가지의 의미를 부여한다. 첫째, 성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Eucharist)이다. 교회와 세계 속에 이루신 모든 것들에 대해,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여 이루실 모든 것들에 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큰 감사라고 한다. 종교개혁자들은 칭의와 성화 차원에서 감사를 강조했다. 그러나 WCC는 창조 세계와 '하나님의 선교' 개념의 '하나님 나라'의 종말적 완성에 대한 감사를 강조한다.
둘째, 그리스도에 대한 기억(anamnesis)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께 대한 기념이다. 동시에 재림과 마지막 왕국을 미리 맛봄이라고 한다. 이 개념에는 쯔빙글리의 기념설 개념이 엿보인다. 그러나 과거에 존재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념일뿐 아니라 그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미리 맛봄이라는 점에서 아주 다른 성만찬 개념이다.
셋째, 성령의 초대(invocation)이다. 성령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성만찬 때 우리에게 실제로 임재하게 하신다. 그리스도는 성만찬의 중심에 있으므로 그 모든 행위는 '성령의 초대'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한다.
넷째, 성도의 교제(communio sanctorum)이다. 성만찬적 사귐은 하나님과 수직적인 사귐인 동시에 성도들 간의 수평적인 사귐이다. 성만찬에 동참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다른 동참자들과 하나가 된다. 성만찬 교제 가운데 생기는 연대성과 사회 책임성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 점은 로마가톨릭교회나 종교개혁자들이 알지 못하는 아주 새로운 성례 개념이다.
다섯째, '하나님 나라'의 식사이다. 성만찬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비전을 열어주며, 그 통치를 미리 맛보게 한다. 인간은 정의, 사랑, 그리고 평화를 위하여 성만찬에 참여해야 한다. 성만찬을 거행하는 그 자체가 곧 교회가 이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한다는 증거이다. 소외되고 눌리고, 가난한 자들과 연대한다는 표라고 한다. 이것은 종교개혁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에큐메니칼적 사회참여와 '하나님의 선교' 개념의 성만찬 이해일 뿐이다. WCC의 성만찬 이해는 예상한 대로 '하나님의 선교'로 연결된다. 성만찬을 '하나님의 선교'와 관련시키고 '하나님 나라의 표지'로 강조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성만찬을 거행하면서 이와 같은 의미를 부여하는 WCC 회원교회들이 많아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개념이 과연 성경에서 온 것인가 아니면 의견수렴과 '하나님의 선교' 개념에서 온 것인가 하는 점이다. WCC의 성만찬 신학은 다양한 교회들이 서로 다른 이해와 실천을 보이지만 동일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와 정교회의 세례와 성만찬의 이해가 다르지만 결국 같은 신앙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신앙상 차별이 없다고 보는 신앙무차별주의를 깔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