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남을 알아주는 사람이 되자2018-04-2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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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에 “사람이 알아주지 아니하여도 성내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느냐(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하는 말이 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서로를 알아주는 것일게다.

 

어떤 신혼 가정에서 생긴 일이다. 직장에서 여름 휴가를 받고 남편은 마냥 즐거워했다. 아내와 같이 지내는 시간이 짧아 아쉬워하던 터라 이제 마음 놓고 함께 지내며 실컷 이야기도 나누고 극장이다 어디다 놀러도 다니리라 생각하여 부푼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서 “여보, 나 내일부터 휴가야!”하며 아내를 바라보았다. 필시 아내가 좋아하리라는 기대를 걸면서….

 

그러나 아내는 의외로 무표정한 얼굴을 하며 “날씨도 덥지 않은데 벌써 휴가란 말이에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내는 휴가 때에 바다로 갈 계획을 세웠는데 시기적으로 너무 일러 그 꿈이 깨지고 만 셈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가 자기 마음을 몰라줌에 욱 치미는 심정이 되었다.

 

“회사에서 내주는 휴가를 내가 어쩌란 말이야.” 남편은 톤을 높여 소리를 질렀다. “왜 성을 내세요!”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이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고 토라졌다. 이래서 이 부부는 휴가를 엉망으로 만들고 말았다. 조그마한 일에도 서로의 감정을 몰라주면 이 꼴이 되는가 보다.

 

옛 시구에 이런 것이 있다.

 

“인생이여,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은혜에 감격하지 않으랴. 그 은혜를 보답하는 마당에 목숨인들 아끼리. 구태여 공명을 따지는 이 누가 있을까(人生感意氣 功名誰復論).” 다메섹으로 예수의 제자들을 잡으려고 가다가 도상에서 거꾸러진 바울은 후일에 이와 같이 술회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디모데전서 1:12~14)

 

주께서 자기를 알아주신 데 대하여 감격하고 감격하여 일생을 주께 헌신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체휼하시며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불도 끄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끌려온 간음한 여인을 죽음에서 구출하신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다. 죽음의 공포와 죄책에서 몸부림치는 여인을 불쌍히 보시고 한 마디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위로의 말씀만 하셨다. 이 은혜에 감격한 여인은 탕녀에서 성녀로 변화되어 일생 동안 주를 따랐다.

 

사람을 교화함에 있어 죄를 책망하기보다는 허물을 덮어 주고 그를 이해해주며 사랑으로 감싸줄 때 변화하는 기적이 일어난다.

 

내가 처음으로 전도 다닐 때다. 구원의 도리를 정정당당히 설파하여 항상 논쟁에 이김으로 쾌재(快哉)를 불렀으나 결과는 한 사람도 구원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하루는 어떤 열심 있는 구역장님의 부군을 전도하러 갔는데 그분이 교회를 비난하고 아내를 욕하고 심지어 나에게까지 폭언을 해댔다. 나는 일일이 그분의 심정을 이해하고 긍정하면서 위로도 하고 사과도 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다음 주일날 그 구역장 부부가 나란히 교회에 나오고 나를 찾아와 놀란 일이 있었다.

 

우리는 아집을 버리고 먼저 남을 알아주는 사람이 되자!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로마서 12: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