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살신성인2021-01-09 20:50
작성자

▶몸을 죽여 어짐(仁)을 이룬다는 말인데, 논어(論語)에 있는 구절이다. “높은 뜻을 가진 선비와 어진 사람(志士仁人)은 살기 위해 어짐(仁)을 버리지 않고 몸을 죽여 어짐(仁)을 이루느니라” (志士仁人無求生以害仁 有殺身成仁) 마땅히 죽어야 할 때 생을 구하면 그 마음이 편치 못하나니 이는 그 마음의 덕을 해롭게 하는 것이요, 마땅히 죽어야할 때 죽으면 마음이 편안하여 덕을 온전히 한다는 것이다. “아침에 도(道)를 들어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가하니라”(朝聞道夕死可矣)하여 군자는 죽고 사는 것보다 도가 더 귀중함을 말하고 있다.

 

성경에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 7~10)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자(仁者)를 위해서나, 의인(義人)을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다. 참으로 죄인들을 위하여, 그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죽으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들의 죄를 대속하시도록 그 아들을 내어주신 것이니,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사랑의 현현(顯現)이시다. 논어에서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이 인(仁)을 이루기 위하여 죽을 수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자취하였으니 그 사랑의 높이와 깊이가 어찌 지사(志士) 인인(仁人)에 견줄 수 있겠는가?

 

오늘날 국제간의 분쟁과 사회각층간의 시비와 인간 개인간의 다툼이 구구한 도덕적인 범주에서 해결될 문제이겠는가? 이 근본문제는 사람이 사람을 참으로 사랑하느냐 아니하느냐에 달려있다. 만 번 죽어야 마땅한 죄인까지도 사랑하여 죽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충만하다면 모든 난문제는 아침 햇빛에 안개 사라지듯 사라질 것이다. 실로 아무 댓가도 요구하지 않는 예수님의 자기 희생의 사랑앞에 어떠한 대적(對敵)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전백년하청2021-01-16
다음전화위복2021-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