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2018.09.23] 우선순위2018-09-2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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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 사람이 가진 신앙이나 철학은 그가 사물을 선택하고 일을 처리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칩니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이란 세계관이나 인생관 등을 이르는 말입니다. 사물을 선택하고 일을 처리하는 태도의 핵심은 우선순위입니다. 모든 사람이 우선순위로 삼아야 할 것들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이성(理性)보다 하나님의 계시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이성이란 사물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마음의 작용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성만능주의, 이성제일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알 수 없고, 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인간에게 이성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그 위에 더욱 놀라운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시는 이성보다 더 차원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은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온전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구속의 은혜와 진리, 거듭남의 진리를 이성만으로는 도저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휴거와 부활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에 대한 계시의 말씀 역시 사람의 이성만으로는 깨닫지 못합니다.

 


이러한 계시의 말씀을 인간의 지식과 경험 안에서 설명하려고 하다 보니 성경을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문학 등으로 비평하고,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기사와 이적에 관한 부분을 신화로 규정하고 비신화화 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비성경적인 신학 사조가 교회를 잠식하고 성경적 믿음을 갖는 것을 훼방합니다. 인간의 이성보다 하나님의 계시에 우선순위를 두고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시하신 말씀이 이해가 안 되어도 믿고, 이해가 안 되어도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둘째는, 재물보다 신앙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사람이 재물을 넉넉하게 소유하려고 하는 것은 정상적인 욕망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물질만능주의, 물질제일주의로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재물보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우선순위가 바뀌게 되면 많은 소유물이 복이 아니라 저주가 됩니다. 아브라함은 재물보다 신앙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았고 반면에 그의 조카 롯은 신앙보다 재물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 성을 유황불로 심판하실 때 롯은 재물을 다 잃었고 롯의 아내는 재물에 연연하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불신자인 부모나 배우자가 부모냐 예수님이냐, 남편이냐 예수님이냐 양자택일하라는 무지막지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견줄 대상이 아닙니다. 불신자 중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가지면 무조건 미워하고 핍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진실한 신자는 그러한 핍박에 굴하지 않습니다. 신앙이 육신의 생명보다 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신앙이 우선순위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사람들의 뜻과 상황보다 하나님의 뜻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을 원칙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결정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닙니다. 성도는 다수의 뜻을 존중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현실상황이나 다수의 주장과 뜻이 어떠하든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동해야 합니다. 홍해 앞에 당도하여 뒤에 추격하는 애굽 군대가 달려오는 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울부짖으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을 때, 지도자 모세는 이러한 백성들에게 압도당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였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어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동했습니다. 많은 사람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순위로 삼았습니다.



인생의 성공 실패의 관건은 우선순위의 결정에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용목 목사님 신앙칼럼 ‘푸른 초장 맑은 시내’ 말씀 중에서)